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광화문 광장-김준형 의사 칼럼니스트] 약자가 죽어가는 이유
과거 흑인 노예들은 아프리카에서 팔려와 비참한 생활을 했다. 일반적으로 백인 상인들이 흑인을 납치했던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정작흑인을 노예로 팔아넘긴 사람은 같은 흑인이었다. 흑인 부족장들은 다른 마을을 습격해 노예를 만들고, 이 사람들을 팔아 넘겼던 것이다.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쓴 소설이 ‘프로스페리 메리제’가 쓴‘ 타망고’이다. 타망고는 아프리카의 흑인 인신매매자 이름이다. 어느 날 타망고는 프랑스 국적의 르두 선장과 거래를 했다. 거래는 성공적으로 끝났고, 기분이 좋아진 타망고는 술을 먹고 잔뜩취해 버렸다. 그런데 술에 취한 타망고가 그만 자신의 아내를 르두 선장에게 팔아버렸다.

다음 날, 술에서 깬 타망고는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리고 르두 선장을 쫓아갔다. 르두 선장에게 아내를 돌려 달라고 부탁했지만 오히려 타망고가 노예로 잡히고 말았다. 항해 도중 타망고는 흑인 노예들과 함께 선상 반란을 일으켜 백인들을 모두 죽였다.

하지만 여기 흑인들 가운데 배를 제대로 조정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배는 표류했고 흑인들은 굶주림에 죽어갔다. 비스켓 하나에도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일이 반복됐다. 결국 배가 구조되었을 때 살아남은 사람은 타망고 한 사람 뿐이었다. 작가는 흑인들이 한명씩 굶어 죽어가는 모습을 묘사하면서‘ 약자가 죽어가는 것은 강자가 그를 죽이기 때문이 아니고 그를 죽게끔 내버려 두기때문이다’라고 기술했다.

얼마 전, 탈북민 모자가 굶어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아직도 굶어 죽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사회를 큰 충격에 빠뜨렸다. 특히 죽은 사람이 굶주림을 피해 목숨을 걸고 탈북한 사람이라 안타까움은 더 했다. 어떤 이들은‘ 사람이 굶어죽는 동안 정부는 무엇을 했나?’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 사건은 2014년‘ 송파 세 모녀 자살사건’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당시 세 모녀는 질병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수입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국가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못 했고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후 정부는 법과 제도를 재정비 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5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또 다시 같은 비극을 마주했다. 

법과 제도가 아무리 좋아도 현실에서 이용될 수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탈북민이였으니 우리 사회를 잘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고 국가에 도움을 청해야 한다는 사실조차도 몰랐을 것이다. 혹자는 국가가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먼저 파악해서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옳은 말이다. 하지만 구청이나 시의 복지담당자는 많은 수의 저소득층 주민을 관리해야 한다. 지역사회 주민의 고충을 모두 파악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필자가 아는 복지담당 공무원이 실수를 해서 기초수급자에게 수급비를 지급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를 정정하는 과정은 복잡할 뿐만 아니라, 지급되지 못한 금액이 반드시 지급된다는 보장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 공무원은 자신의 봉급을 털어 수급자에게 주려고 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이 공무원은 웃으며 말했다“. 수급자가 고통 받도록 할 수는 없잖아요”

이런 일이 터질 때면 우리는 정부와 복지담당자를 탓한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몇몇 복지담당자들이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들은 이미 혼신의 힘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화답할 차례다. 우리가 주변 사람들에게 가지는 조그만 관심이 기적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번 사건에서 누군가 이 모자에 관심을 갖고 주민센터 등에 전화를 해서 도움을 청했다면 극단적인 상황만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메리제의 말처럼 약자가 죽어가는 것은 강자가 약자를 죽이기 때문이 아니다. 약자가 죽게끔 내버려 두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굶어죽는 사람보다는 강자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지켜주지 못한 우리 사회의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바다.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