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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포럼-윤동호 국민대 교수] ‘마을법원’이 필요하다

영국 마가렛 대처 수상이 ‘현 시대의 가장 훌륭한 법관’이라 칭했던 저명한 법관 알프레드 더닝은 그의 저서 ‘정의를 위한 길(The road to justice)’에서 정의란 ‘지역의 선량한 시민들이 공정하다고 믿는 바로 그것’이라고 했다. 정의의 궁극적인 판단권은 시민에게 있으며 법관은 그 대리자로서 시민의 정의관을 확인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을 위한 형사사법’은 우리의 오랜 지향점이자 숙제다.

그러나 우리의 형사사법과 현실은 그와는 거리가 멀다. 주 이유는 사건 수는 과도한 반면 법관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국민 입장에서는 형사절차에 연루되어 있는 것만으로도 고통이다. 신속한 절차진행은 매우 중요하다. 약식명령 청구 후 법원의 서면심리기간 14일(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 제22조)은 대부분 지켜지지 않는다. 2017년에 대략 200만건의 형사사건이 처리됐는데 약60만건(약30%)은 벌금형이 대부분 선고되는 약식절차로 처리됐다.

영국은 전체 형사사건의 95%를 지역단위로 설치된 치안판사법원에서 처리한다. 영국 전역에는 총 2만9000여 명의 치안판사가 있다. 이중 2만8000여 명은 대법원장이 임명한 비법률가인 일반 시민이다. 치안판사는 1년 이하 구금형과 5000 파운드(한화 약 730만원) 이하 벌금형 선고가 가능한 사건의 재판을 담당한다. 미국은 주 별로 비법률가인 치안판사로 운영되는 법원과 법률가인 치안판사로 운영되는 법원이 혼재돼 있다. 다만 1년 이하 구금형을 선고할 수 있는 사건의 재판을 담당하는 치안판사법원이 마을 단위로 설치된 점은 영국과 동일하다. 캐나다와 호주 역시 치안판사법원을 운영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유사 제도가 논의된 바 있다. 과거 사법개혁위원회 등에서는 법원조직 분산을 통해 국민에 대한 접근성을 제고하는 취지의 ‘간이법원’ 설치가 심도 있게 검토됐다. 경미범죄의 신속한 처리를 통해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할 수 있으며, 법관이 사건을 처리하면서 지역의 특수한 사정을 고려해 재판이 구체적 타당성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비법률가인 법원 일반직 공무원 중 법률소양을 갖춘 성품이 훌륭한 자를 법관으로 임용하는 방안이 제시되기도 했다.

실효적인 대안으로 현재 운영되고 있는 시군법원을 ‘마을법원’ 수준으로 확대 신설해 경죄만을 전담하여 법정에서 신속하게 처리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도 있다. 현재 전국에는 100개의 시군법원이 설치돼 있으며, 시군법원 판사는 75명에 불과한 상황이다. 그 규모가 너무 작아 국민에 대한 접근성을 제고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관할 사건 또한 3000만원 미만의 민사사건이나 즉결 심판사건 등으로 제한돼 경죄사건을 신속히 처리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최소 행정구역 단위 내지 경찰서 단위마다 ‘마을법원’을 확대 설치하고, 현재의 즉결심판과 약식명령 대상 사건을 담당하도록 하여, 국민의 가까이에서 국민의 편익을 제고하는 데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 퇴직 법관을 임용하거나 로스쿨 제도를 통해 늘어난 법조 인력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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