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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땅서 답 찾더라”…해외에 이식되는 韓 부동산 제도
베트남·잔지바르·태국 韓지가산정제도 시범지역 적용
아시아 국가, 주택대량공급?…선분양·분양보증 눈길
“쌓아온 노하우가 모두 수출대상”

[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 지난해 6월 베트남 북부 박닌성에는 1만6000여필지 곳곳을 살피고 다니는 ‘오토바이 부대’가 등장했다. 한국감정원 직원 4명, 베트남 현지 공무원 등 6명으로 구성된 지가산정팀이다. 이들은 토지마다 이리저리 줄자를 대가며 도로와의 거리, 고저, 토지 형상 등을 파악했다. 이 오토바이팀은 베트남의 빈푹성, 다낭시, 껀터시 내 시범구역 등에도 출동했다. 이 사업은 올해 5월 마무리됐다. 이들 지역은 현재 한국처럼 표준지를 토대로 개별필지의 특성을 반영한 토지가격을 뽑을 수 있게 됐다.

#. 카자흐스탄에서는 2008년 금융위기로 건설사의 부도·파산이 이어지자 주택 공사가 '올스톱'되는 현장이 많았다. 이 정부는 이후 주택을 대량 공급하기 위한 방법으로 한국의 ‘선분양’제도를 채택하고, 한국의 주택보증제도를 도입했다. 3년 전에는 아예 국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같은 역할을 하는 기관도 설립했다.

국내 부동산 제도가 속속 해외 땅을 밟고 있다. 토지를 어떻게 관리·평가하고, 어떤 과세 및 보상 체계를 마련할 것인가는 다수 국가의 관심사다. 관련 경험이 적은 개발도상국은 단기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제도를 마련한 한국의 사례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감정원이 현재 베트남 박닌성, 빈푹성, 다낭시, 껀터시 내 시범구역에서 토지특성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감정원]

베트남은 그간 인접한 도로를 기준으로 구간을 나눠 토지가격을 산정해왔다. 이는 같은 구간 내 토지를 동일한 것으로 보는 것이어서 보상 등에서 개별필지의 특성을 반영할 수 없다는 문제로 이어졌다. 하지만 한국의 지가산정제도를 도입한 시범지역에서는 도로 뿐 아니라 토지의 개별 특성을 고려한 토지가격이 산출되면서 이런 고민이 해소됐다.

베트남에서 가능성을 엿본 탄자니아 잔지바르와 태국도 각각 2020년, 2021년까지 한국의 지가산정 제도를 자국 시범지역에 적용해보기로 했다. 한국감정원 관계자는 “선진국 사례를 봐도 우리나라처럼 필지 별로 나눠 공시지가를 국민에게 제공하는 국가는 없다”며 “해외에서는 표준지를 먼저 선정하고 개별필지의 가격을 계산하는 구조도 인력·비용의 효율성이 높다고 평가했다”고 말했다.

한국감정원이 현재 베트남 박닌성, 빈푹성, 다낭시, 껀터시 내 시범구역에서 토지특성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감정원]

특히 한국감정원이 쓰고 있는 ‘단일가격’과 ‘정보시스템’은 비슷한 공적평가제도로 해외시장을 공략 중인 일본과 차별된 점이다. 일본은 지가공시, 지가조사 등 이용 목적에 따라 토지를 평가하는 항목이 다르다. 이에 따라 가격도 다원화됐다. 반면 한국은 단일한 지가를 뽑아 60가지 행정분야에 이용한다. 한국감정원 관계자는 “베트남만 하더라도 보상비나 사용권, 토지용도변경에 따른 세금 등을 추산하는데 한국처럼 단일가격을 사용하고 싶어했다”며 “또 이런 것이 체계적인 데이터로 누적되고 전산으로 관리된다는 것에 관심을 보였다”고 했다.

주택의 대량 공급이 시급한 아시아 국가들은 주택분양보증을 전담하는 HUG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분양보증은 건설사가 파산해 분양계약을 이행할 수 없을 때, 보증기관이 주택분양의 이행 또는 납부한 금액의 환급을 책임지는 제도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선 선분양 제도가 안착하는 데 밑바탕이 되기도 했다.

카자흐스탄은 한국을 벤치마킹 대상으로 콕 집었다. 주택을 대량 공급하기 위해 2016년 4월 선분양제도를 법제화하고, 같은 해 10월에는 주택분양보증을 전담할 주택보증기금(HGF)도 설립했다. 지난 5월 말까지 발급한 주택분양보증은 22건이다. 인도네시아도 현재 자카르타 인근 버카시 지역에서 주택 100만호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데, 여기에도 한국의 주택보증제도를 활용해 주택을 선분양한다는 구상이 담겼다.

HUG 관계자는 “분양보증으로 각국의 주택 공급을 원활하게 한다는 측면에서 한국의 주택금융제도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며 “제도를 전수함으로써 국내 건설사가 해외 도시·주택건설 사업에 진출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형 공간정보기술도 주목받고 있다. 한국국토정보공사(LX)가 2017년 마무리한 ‘우루과이 지적도 위치정확도 개선사업’은 위성 아리랑3호와 드론 측량을 활용한 첫 해외 진출 사업이었다. LX 관계자는 “위성과 드론으로 위치 정확도를 개선해 소유권 관리도 명확해졌다”며 “이를 보고 인접국인 파라과이에서도 기술력을 도입하고 싶다는 요청이 왔다”고 했다.

올해 4월에는 ‘투르크메니스탄 지적정보 인프라 구축사업’ 수주로 공간정보기술 수출 100억원 시대도 열었다. 90년대 구소련에서 독립한 투르크메니스탄은 토지사유화를 추진 중이지만, 한반도의 2배 규모의 땅의 토지소유권을 확인할 수 있는 기초자료가 부족하다. LX는 위성항법시스템(GNSS), 위성영상으로 농경지의 디지털 지적도를 구축하고 이를 관리할 토지정보관리시스템을 만든다.

쿠웨이트 압둘라 신도시 조성예상도 [LH공사]

아예 해외 신도시 조성 사업에 뛰어든 사례도 있다. 정부 간 협력사업(G2G) 방식으로 추진 중인 쿠웨이트 압둘라 신도시가 대표적이다. 수도인 쿠웨이트시티 서쪽 경계에서 3.5km 떨어진 이곳에서는 총 64.5㎢ 부지에 약 4만호의 주택이 건설된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이곳을 첨단시설과 기능을 갖춘 ‘한국형 스마트시티’로 만들기 위해 현재 433억원 규모의 종합계획 수립 및 실시설계 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주택·도시 건설, 분양제도 등 부동산 시장 안팎에서 쌓아온 노하우가 모두 수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만희 서울시립대 국제도시과학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는 측량, 수용보상, 주택공급시스템 등에서 많은 경험이 있다”며 “청약저축에 가입하게 하고 LH공사를 통해 개발이익을 환수해 재원을 확보하는 것에서부터 미개발지를 확보해 인프라를 깔고 도시로 바꾸는 것이 그 예”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는 중앙정부와 지자체, 민간이 각각 수출 아이템을 찾고 서로 팀플레이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y2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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