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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대근의 현장에서] 한층 젊어진 부동산 시장 참여자들, 그 이면에는…

“은퇴하기 전까지 강남 아파트에 입성하는 게 목표입니다. 빚을 좀 더 늘리더라도 한 단계씩 서울의 중심 입지로 이사를 하고 있는데요. 노후 대비를 위해 부동산 만큼 확실한 게 없는 것 같습니다.”

국내 모 대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는 30대 후반 직장인의 말이다. 6년 전 결혼을 앞둔 무렵 그는 양가부모로부터 별다른 지원을 받지 못했고 전셋집에서 신혼을 시작했다. 그러나 ‘부동산에 답이 있다’고 확신하고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지금은 강북의 한 아파트 등기부 등본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현재도 정기적으로 부동산 공부 모임에 참여하고, 뜻이 맞는 사람들과 직접 현장 임장(조사)에 나간다고 한다.

최근 ‘오포세대’(연애, 결혼, 출산, 집, 경력 등 5가지를 포기한 세대)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우리 주변에서 ‘내집마련’을 포기한 젊은층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부동산 시장에 참여하는 연령대 또한 낮아지는 양상 또한 뚜렷하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서울 아파트 매입자 가운데 3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25.3%로 40대(26.7%)에 이어 2위에 올랐다. 50대(19.6%)나 60대(11.4%) 보다도 높은 수치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 강화로 1주택자에 대한 대출·세금 제약이 커지면서 무주택·실수요 중심인 30대가 큰 손으로 떠올랐다는 분석도 나온다.

흔히 ‘중년 고시’라고 불렸던 공인중개사 시험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20대와 30대 응시자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1차 시험에만 총 8만1727명이 응시해 41.5%의 비중을 기록했다. 10명 중 4명이 2030세대인 셈이다. 법원 근처에 주로 위치해 있는 부동산 관련 경매 학원도 상황은 비슷하다. 서울중앙지법 근처 한 경매학원에서는 20대부터 60대부터 다양한 연령대가 수업을 듣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학원 강사는 “부동산에 관심 많은 20대 수강생들이 늘어난 것은 예전에 보지 못하던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젊은 세대들이 부동산 시장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다양하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할 경우 건설사·신탁사·시행사 등 부동산 관련 업종 취업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평생직장에 대한 개념이 사라지고, 현 직업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중개사 자격증을 준비하는 젊은 직장인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재테크 시장에서 부동산의 입지가 굳건해지면서 노후 대비로 부동산을 선택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최근 3000만명이 넘는 구독자를 거느린 6세 유튜버 이보람 양의 가족회사 보람패밀리가 강남구 청담동 소재 빌딩을 95억원에 사들였다는 뉴스가 화제가 됐다. 일각에서는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남은 안전자산이 부동산이라는 역설적인 현실을 보여준 게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경기 불황이 지속되는 가운데서도 부동산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오히려 늘어났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7월 주택가격전망 소비자동향지수(CSI)는 106으로 한 달 전보다 9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9·13 부동산 대책 직후인 지난해 10월(114) 이후 가장 높은 수치로, 향후 주택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내수경기에 대한 선행지표로 통하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한 달 전보다 1.6포인트 내리면서 3개월 연속 하락했다.

금리인하로 풀린 시중자금이 부동산 외에 마땅히 갈 곳이 없는 상황은 아이러니하다. 대내외 경제 여건이 불확실해지면서 기업들은 투자를 축소하고 있고, 주요 기업들의 실적 전망이 나빠지다 보니 주식시장 등 다른 시장으로 자금 유입이 안 되고 있는 현실이다.

정부의 잇단 부동산 규제에도 불구하고 최근 서울 강남과 재건축 아파트들이 다시 반등하는 추세다. 국토교통부는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등 한층 강력한 규제 카드를 검토하고 있다. 분양가 상한제가 현실화하면 젊은 무주택자들을 중심으로 청약기회가 넓어질 공산이 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로또 아파트’를 양산하고, 청년층의 주거 양극화만 더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과열 양상을 보이는 시장에 어느 정도 제재를 거는 것은 정부의 역할 중 하나다. 그러나 마땅히 다른 투자 대안이 없는 시장에 일방적인 규제만 남발할 경우 더 큰 부작용만 키울 수 있다. 젊은 세대에게 부는 부동산 열풍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원인과 해법을 모색해가는 정부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정부마저 포기했다는 말은 들리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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