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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克日·이동걸의 ‘넥스트라이즈’

일본이 사실상 ‘한일 무역전쟁’의 방아쇠를 당겼다. 100여년 전 러시아엔 신사들의 ‘결투 규약’ 같은 게 있었다. 모욕의 강도에 따라 등지고 걷다 잽싸게 총을 쏠 때까지 걸음의 수가 적어지는 것이다. 그들에겐 열 걸음 정도의 시간을 주면 적당할까. 인간에 대한 몰이해를 감안하면 발자국 다섯개도 아깝다. 요모조모 뜯어봐도 그들은 신사엔 가당치 않다고 여섯살 아들에게 설명할 수밖에 없다. ‘할아버지들의 아빠들을 때려가며 부려먹었어. 할머니들의 엄마들도 못살게 굴었지. 돈 조금 줬다는 핑계로 제대로 미안하다고도 안 하네…’ 아픈 과거를 들쑤셔 두 나라 미래세대간 감정까지 언짢게 하는 책임이 그들에게 있음을 분명히 한다.

판이 깔렸으니 물러설 순 없다. 그들 논리는 궁색하다.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때문에 주요 화학물질을 한국에 수출하는 걸 규제하는 것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북한에 전략물자를 대도록 방치했기에 규제가 불가피하다는 궤변을 내놓는다. 주요 외신은 ‘설득력 없다(far-fetched)’고 평가한다. 그들은 정치·외교 이슈로 무역질서까지 오염시켰다. 나라별 주특기를 살려 잘 만드는 걸 내다파는 국제적 ‘공급망’을 무기화했다. 근시안적 자충수라는 관전평이 쏟아진다. 승부가 당장 가려지긴 쉽지 않다. 그들의 로비 혹은 꼼수는 방심을 불허한다.

감정은 즉물적 해결을 원한다. 그러나 경제는 우회하더라도 근본 처방을 취해야 마땅하다. 이 지점에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의 지론을 조명할 만하다.

산은은 어제부터 오늘까지 ‘넥스트라이즈 2019’라는 행사를 치른다. 내로라하는 국내외 대기업과 벤처·스타트업을 연결하고, 벤처캐피탈이 투자 상담도 해주는 장이다. 4차 산업혁명을 견인할 주역을 키우겠다는 비전에서다. 산은이 나락으로 떨어진 기업 구조조정에만 매달려 미래를 설계하지 못하는 점을 안타까워 한 이 회장이 작심하고 추진했다는 후문이다. 구조조정 전담 자회사로 KDB인베스트먼트를 따로 만든 것도 대한민국의 다이내미즘(역동성)을 다시 한 번 띄우는 데 산은이 본체가 돼야 한다는 철학이 담겼다. 그는 ‘아이디어 충만한 혁신기업·금융의 지원·정부의 환경 조성’이란 3박자가 맞아 떨어져야 역동성이 분출한다는 믿음이 있다.

농익을 만큼 익었고, 추가로 비대해질 여지도 없는 대기업엔 더 이상 일자리 창출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 꿈틀대는 벤처·스타트업에 경제 사활이 달렸다는 진단은 이제 과감한 실행만을 기다린다. 대기업은 개방형 혁신을 하고, 스타트업은 아이디어로 자금을 지원받아 시너지 효과를 내는 모델이 성공하면 극일(克日)은 부수적인 성과로 따라올 거다.

중요한 건 성공여부가 불확실함에도 한 발 디딜 용기가 있느냐다. 우리 경제 주체 모두에게 던져진 물음이다. 극일도, 넥스트라이즈도 인내가 필요하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자초했다고 떠벌리거나, 처방전에 따른 약효가 더디다고 아우성치고 사분오열돼 비난에만 열을 올리면 제대로 될 일이 없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고, 모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으로 불행하다’(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리나’) hong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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