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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비정상의 일상화…그리고 민주주의의 위기
어지럽다. 혼돈의 연속이다. 익숙했던 통념과 정설이 모두 뒤틀린다. 최근 격화되고 있는 국제관계의 갈등 구도 속에 시대를 풍미했던 두 이념과 통설의 위기가 감지된다. 다름 아닌 자유무역과 민주주의다.

영국 고전파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는 19세기 초 자유무역의 토대 이론인 비교우위론을 내놓으며 크게 주목을 받았다. 리카도는 나라마다 비교우위를 점하는 물건(재화)을 집중적으로 생산해 다른 나라와 거래하면 양국 모두 이익을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비교우위론이다. 비교우위는 교역 상대국과 비교해 낮은 기회비용(한 재화 생산을 위해 포기한 다른 재화의 비용)으로 재화를 생산하는 능력을 말한다. 세계 각국이 비교우위 상품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면 그만큼 생산성이 향상되고 세계의 재화 생산량도 늘어난다.

이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에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중국은 저렴한 노동력과 낮은 토지가격에서 나온 경쟁력으로 전 세계의 공장이 됐다. 이 제품의 최대 구매자는 소비 대국 미국이었다. 기축 통화국이자 세계의 패권국이었던 미국은 강력한 소비자 역할을 자임하며, 낮은 물가로 양질의 제품을 구매하는 이점을 누렸다. 미국은 대신 경쟁력을 가지는 금융과 첨단기술, 군수산업 등에서 비교 우위를 점했다. 양국은 이렇게 서로가 강점을 가지는 산업에 주력하며 윈윈의 구도를 이어갔다. 세계는 이를 바탕으로 고도성장을 이어갔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과 함께 이 질서는 완전히 붕괴됐다. 너무나 익숙했던 세계 질서가 무너지자 전 세계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돈의 시대를 거치고 있다. 정의처럼 받아들여지던 자유무역시대에 금기어로 취급받던 관세 부과와 무역 보복의 뉴스가 자연스럽게 전해진다. 심지어 민간기업에 대한 구매금지라는 극단적인 소식 마저 들려온다.

소규모 개방경제로 분류되는 대한민국은 이런 비정상의 시대에 극도로 취약하다. 미-중간 무역 분쟁으로 기업들은 불확실성에 몸서리를 친다. 설상가상으로 일본은 우리나라 대법원의 일제 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응해 무역보복 조치를 시작했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 경제보복의 조치가 가동되는 시대를 과연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이런 극단의 시대, 비정상의 일상화 시대의 근간에는 민주주의의 위기가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한 행보는 재선을 노리는 그의 욕망과 연결해야 해석이 가능하다. 일본의 경제 보복 역시 이달로 예정된 참의원 선거의 승리를 위한 조치라는 분석이 가장 설득력이 높다. 유사 이래 가장 훌륭한 정치 철학으로 꼽히는 민주주의는 마치 절대선으로 추앙받아왔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근본적으로 ‘표’에 취약하다. 여론이 원하고, 국민들이 바란다면 무엇도 감행될 수 있는 게 민주주의다. 자유무역의 위기를 자초한 것도 결국 민주주의에 다름 아니다.

이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 또한 민주주의의 강력한 힘으로 대통령 탄핵과 정권교체의 역사적 사건을 경험했다. 이후 현 정권은 과거 정권을 적폐로 간주하고 ‘적폐청산’을 2년째 이어가고 있다. 예상치 못한 일본의 경제보복도 과거를 바로잡고자하는 현 정부의 일재 잔재 청산 기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비정상이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 민주주의의 근본적 한계에 대한 경각심이 더욱 절실해 보인다. 오늘의 이 혼란이 후세에 어떻게 기록될 지 자못 궁금해진다.
 
정순식 산업섹션 재계팀장 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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