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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영국이 낳은 가장 한국적인 디자이너 계한희
패션명문대 ‘센트럴 세인트 마틴’
최연소 입학에 졸업 동시에 데뷔
자신 이름 딴 브랜드 ‘카이’ 세워
전세계 패션위크 통해 개성 표출
유튜버·작가 활동 대중 더 가까이



계한희 디자이너의 이름은 ‘한국 여자’(한희ㆍ韓姬)라는 뜻이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그의 부모님은 늘 한국인인 것을 잊지 말것을 상기시켰다. 그가 K-패션의 선두에서 한국인으로써 이름을 알리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계한희는 2011년 졸업과 동시에 세계 4대 패션쇼인 런던패션쇼에 데뷔했다. 패션 명문 대학인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 최연소로 입학했기 때문에 데뷔 당시 나이가 스물네 살에 불과했다. 사실상 졸업 패션쇼였던 이 자리에서 일본 바이어들로부터 거래 제의를 받았다. 브랜드 이름도, 가격표도 없었지만 내친김에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 ‘KYE(카이)’를 세웠다.

기회가 있으면 일단 삼키고 어떻게든 소화를 시켰다. 수완이 좋은 사업가도, 영민한 전략가도 아니었지만 ‘우물쭈물하면 무너진다’는 오기 하나로 버텼다. 2013년에 서울패션위크를 통해 국내무대에 올랐고, 같은 해 정부의 지원을 받아 뉴욕패션위크에도 진출했다. 직원들에게 줄 월급이 없으면 아르바이트를 뛰어 비용을 충당했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2013년 한국 패션 디자이너 협회(CFDK) 신인상 수상자로 선정됐고, 2017년에는 울마크 프라이즈 아시아 지역 여성복 부문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8년이 지났지만 그의 집념은 날카로운 눈매처럼 날이 서있다. 컬렉션 라인인 카이로 예술성을, 세컨드 라인인 ‘아이아이(EYEYE)’로 대중성을 잡기 위해 한시도 쉬지 않는다. 방송ㆍ유튜브ㆍ책 등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미디어를 등대 삼아 범람하는 트렌드 속에서 길을 찾는다. 더 뾰족해진 오기로 무장한 그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쇼룸에서 만났다.

지극히 한국적인 디자이너=계한희는 미국에서 태어나 국제학교를 다녔다. 가늘고 긴 눈으로 세상을 봤지만 유창한 영어로 세계와 소통했다. 그래서인지 그가 영국 유학길에 오른 건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최연소라는 화려한 수식어를 달고 대학에 입학했지만 나이는 한낱 숫자에 불과했다.

센트럴 세인트 마틴은 졸업하기 힘든 학교로 악명이 높았다. 한 학년에 40명이 입학하면 중간에 20명을 떨어트리고, 또 그 중 7~10명을 추려내 경쟁을 붙인 후 최종적으로 3~5명만 졸업 패션쇼에 올리는 식이었다. 그는 “사물함에 작품을 두고 가면 누군가가 몰래 찾아내 찢어버릴 정도로 분위기가 살벌했다”고 말했다. 하루를 버텨 하루를 생존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계한희는 경쟁 끝에 런던패션위크에서 졸업 패션쇼를 치르는 최종 5인에 선정됐다. 세계적인 무대에서 신고식을 치렀지만 런던이 계속 있을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묘한 인종차별에 질렸던 탓도 있지만, 결국은 한국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과 모바일이 확산되면서 세상이 동시다발적으로 변하고 있었어요. 케이팝과 한국 영화가 뜨고 있던 시기기도 하죠. 굳이 영국에 있는 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한국에 살아도 얼마든지 런던이나 뉴욕에서 쇼를 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세계적인 한국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어요. 왠지 모르게 한국에서 잘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죠.”

예술과 상업의 균형추=계한희는 2015년 청바지 브랜드 ‘플랙진’을 운영하는 플래시드웨이브코리아와 협업해 세컨드 브랜드 아이아이를 냈다. 그러나 브랜드가 안착하기도 전에 플래시드웨이브코리아가 기업회생절차에 돌입했다. 언뜻 보면 위기로 여겨질 이 사건에서 계한희는 기회를 봤다. 아이아이를 인수해 대중적인 브랜드를 직접 경영하는 계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계한희는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이 브랜드에 어김없이 투영하기 시작했다. 화려한 색상과 디자인이 이 브랜드의 상징이 됐다. 지금 현재 이 브랜드는 한국인 뿐 아니라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K브랜드로 성장했다. 이와 관련 계한희는 “제 안에 있는 수많은 자아 중 여성스럽고 캐주얼한 면을 끄집어내 누구나 입고 싶은 옷을 디자인 한다”며 브랜드 철학을 설명했다.

아이아이로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해 컬렉션 라인인 카이에 재정을 수혈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재정난에 시달리는 디자이너가 ‘롱런’하기 힘든 현실을 고려한다면, 대중 브랜드와 고급 브랜드를 양축으로 삼아 경제적으로 균형을 맞추는 것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나온 전략일 것이다.

카이는 계한희의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자아만을 추출해 원액만 담아낸 브랜드다.

“카이는 옷으로 표현한 제 자아나 다름없어요. 매출을 의식해 디자인할 경우 오히려 제가 보여주고 싶었던 부분이 훼손될 수 있어요. 꼭 대중적이지 않아도, 옷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입었으면 좋겠어요.”

그가 카이를 통해 보여주는 디자인도 한층 성숙해졌다. 초창기에는 주로 단순한 실루엣에 그래픽 패턴을 강조했다면, 이제는 셔링 장식과 커팅, 아일릿 기법 등 여러 디자인적인 요소들을 결합한 결과물을 내놓는다. 계한희는 “시간이 흐를수록 좀 더 내공이 들어간 옷을 보여주고 싶다”며 “일종의 완벽주의가 있어서인지, 100% 만족하는 옷은 없고 만족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더 깊숙이 대중 속으로=2010년 이후 패션은 ‘패스트푸드’처럼 빠르게 소비되고, 소모되고 있다. 소비자들은 즉각적으로 시선을 끄는 SPA브랜드(제조ㆍ직매형 브랜드)나 온라인쇼핑몰의 현란하고 값싼 의류로 눈길을 돌렸다. 예전처럼 목돈을 모아 20만 원짜리 옷 한 벌을 사기보다, 만 원짜리 옷 20벌을 사는 소비자들이 늘었다. 매번 새로운 것을 갈구하는 소비자에게 브랜드를, 더 나아가 디자이너 개인을 각인시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 됐다. 이젠 디자이너도 수많은 브랜드의 홍수 속으로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홍보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이런 면에서 계한희는 영민하다. 단순히 브랜드를 알리는 것을 넘어 스스로를 ‘브랜딩(branding)’하는 법을 본능적으로 터득했다. 싸이월드 시절엔 가수 지드래곤ㆍ씨엘ㆍ모델 이수혁 등과 어울리며 ‘패션 아이콘’으로 유명세를 얻었다. 2009년 이후에는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ㆍ‘세계 3대 패션 스쿨을 가다’ㆍ‘팔로 미’ 등의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얼굴을 알렸다.

2014년에는 자신의 멘토링을 담은 책 ‘좋아 보여’를 냈다. 당시 이메일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패션 진로에 대한 수많은 질문을 받았던 그는 아예 경험담을 책으로 펴냈다. 디자이너자 방송인, 작가로 보폭을 넓힌 것이다. 최근에는 유튜브 채널 ‘계자이너’를 개설해 대중과 더 가까이 소통하고 있다. 유튜브에 고스란히 담긴 그의 일상은 디자이너 계한희를 정의하고 알리는 역할을 한다.

계한희는 무덤덤하면서도 차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예전부터 방송에 출연해서 그런지 혼자 영상을 찍는 데 익숙해요. 카이와 아이아이의 정체성이 뚜렷하기에 제 자신을 브랜딩하는 일도 어렵지 않은 것 같아요. 한 때는 외딴섬에서 혼자 사는 게 꿈이었지만 이제는 직원 13명을 거느린 가장이 된 느낌이에요. 그야말로 일이 인생이죠.”

박로명 기자/dod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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