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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신·불안·불만 헬조선…‘우물 파는 리더십’이 필요해
베이비붐·에코세대 포커스 집단 연구
‘압축성장’ 가치 간극 확대·중산층 붕괴
제도 불신·미래 불안·사회 불만 증폭

갈등 해결 위한 ‘장기적 비전’ 리더 필요
개성 존중·공동체 의식이 품격있는 사회


“우리 사회의 경쟁은 과감한 창의적 경쟁이라기보다 소극적으로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경쟁에 가깝다.패자부활전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실패하면 안된다. 그래서 과감하게 창의성 경쟁을 하지 못하고 모범답안이 있는 위험회피 경쟁에만 몰입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회의 품격과 연관해서 살펴보아야 할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점이다.”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가 넘는 선진국이지만 국민들의 대다수는 그닥 풍요를 체감하지 못한다. 행복감은 떨어지고 자살률은 세계 최고다. 편가르기 막말정치에 사회갈등은 깊어지고, 신뢰수치는 바닥이다. 헬조선, 극혐이란 말이 일상어가 된 행복하지 않은 나라,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저서 ‘다시 태어난다면 한국에서 살겠습니까’(21세기북스)에서 풍요로워졌지만 행복하지 않은 이런 역설 사회를 이해하는 열쇠는 경제성장이나 민주화 보다 사회의 품격에 있다고 말한다. 사람의 됨됨이를 인품이라고 하듯이, 사회 품격이 그 사회를 말해준다는 얘기다.

압축적인 고도성장과 민주화를 이룬 한국은 전통적인 규범이나 가치와 현실 사이의 간극이 클 수 밖에 없는데, 이런 도덕 규범의 지체와 괴리의 양상이 사회적 품격으로 나타난다.


저자는 사회학적 방법론을 통해 우리 사회의 품격 진단에 나선다. 비슷한 배경을 가진 소집단으로 나눠 같은 주제로 자유롭게 얘기하는 초점집단토론 방식으로,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와 에코세대(1979~1992년)를 포커스 집단으로 삼았다. 다양한 주제에 대해 집단적 토론을 거친 결과, 저자는 우리 사회의 특징이 불신·불안·불만의 ‘3불 사회’로 드러났다고 제시한다.

무엇보다 사회에 대한 강한 불신이 두드러졌다. “과세의 불공정성과 불투명성, 적절치 않은 운용에 대한 분노는 세대를 가리지 않고 폭발적”으로 나타났으며, 복지에 대해서도 필요하다는 데는 다들 인정하지만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돌아가는지에 대해선 의문을 표했다. 제도의 운용이 투명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불안은 베이비붐 세대에겐 IMF트라우마에서 기인한 반면, 에코세대에겐 부모세대 보다 가난해질 수 있다는 걱정에서 컸다. 이에 따라 젊은 층은 공무원 등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는 경향을 보인다. 청년층이 실패위험이 높은 창업에 나서지 않는 상황은 나라의 미래 먹거리 문제로 이어진다. 저자는 “적절한 수준의 위험 회피는 건강함의 표시”이지만, “과도한 위험회피는 강박증”에 가깝다고 말한다.

베이비붐 세대는 늘어난 수명을 따라가지 못하는 은퇴 후 경제력과 존재론적 불안도 상당하다.

저자는 “사회적 웰빙은 사회적 연대 속에서 건강한 몸과 긍정적인 정서를 가지고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사는 삶”이라 할 수 있는데 이것이 채워지지 않음으로써 한국은 개인이나 사회 모두 아픈 상태라고 지적한다.

불신 사회, 신뢰의 적자야말로 한국 사회의 품격을 그대로 보여준다. 정치권은 각자의 정파적 이익을 넘어서는 일에는 합의하지 않고 국민은 정부가 하는 일에 냉담하고, 중재자인 시민사회도 믿지 못한다. 그래서 누구도 믿지 못해 남을 돕는데도 인색하고 나의 어려움도 보상받지 못하는 게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중산층의 붕괴도 사회의 마음을 보여주는 주요 지표로 해석된다. 80년대에는 국민의 75퍼센트가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여긴 것과 달리 지금은 20퍼센트만이 중산층으로 여기고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을 서민이라 생각하고 있다. 문제는 중산층의 붕괴가 희망 격차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미래에 대한 꿈마저도 가진 자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꿈도 자본인데, 꿈 자본의 양극화가 사회적 도전을 약화시키고 불만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3불 사회를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저자는 정치의 역할을 강조한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 경쟁만 존재하는 사회를 벗어나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의 마음을 모을 정치적 지도력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갈등은 사회적 성숙을 위해 필요한 과정으로, 중요한 것은 갈등 자체보다 갈등해결의 역량을 키우는 일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사회적 갈등 해결을 위해 저자가 제시하는 리더십은 ‘우물을 파는 리더십’이다. 단기적인 해결책에서 벗어나 불평등을 줄이는 복지제도, 민주주의의 확대, 공정한 사회 시스템 확립의 방향으로 장기적 비전을 갖고 끌고가는 리더십이다. 우리 안에 이런 리더십을 찾을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저자는 사회적 통합과 소통을 위한 한국적 사회모델의 필요성을 제시한다. 유럽의 노사정협의체방식에서 나아가 보다 폭넓은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포괄적인 합의 체제를 갖추는 것이다.

품격이 있는 사회는 한마디로 잘 통합돼 있는 사회로 얘기된다. 사회구성원들 개개인의 창의성과 개성이 존중되면서 참여를 통한 공동체 의식이 높은 사회다. 선진국의 경우 경제성장을 했기 때문에 사회의 품격이 높아진 게 아니라 우리와 소득수준이 비슷할 때 이미 일정한 사회의 품격을 갖췄기 때문에 더 성장하고 복지국가를 만들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점을 던진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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