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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의 기업가-⑧ 로버트 아이거 디즈니 CEO] 미키마우스 동산을 ‘미디어콘텐츠 제국’으로 완성하다
“디즈니 정체성 되찾을 CEO”
 2006년 픽사 M&A 등 창조성 주력
 올 ‘폭스’ 엔터부문 인수 시너지 노려
 
겨울왕국·주토피아, 테마파크로 연결
 디즈니랜드의 수익 증가에도 한몫
 
제작부터 유통까지…스트리밍 서비스 구축
‘디즈니+’에 마지막 승부수…은퇴도 미뤄



“로버트 아이거가 디즈니 최고경영자(CEO)에 올랐을 때 주가는 23달러 수준이었다. 그가 올해 스트리밍 서비스 ‘디즈니+(플러스)’를 발표한 뒤 디즈니 주가는 130달러를 넘어섰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05년 아이거가 디즈니 CEO에 오른 뒤 현재까지 이룬 업적을 가장 단순하면서도 상징적인 주가 상승률 그래프로 설명했다.

어린이에게 꿈과 환상을 심어주던 디즈니 동산은 아이거의 손을 거치며 에어리언과 아이언맨, 데드풀 등도 함께 모여 있는 미디어콘텐츠 생태계의 제왕으로 거듭났다.

디즈니의 주인은 더이상 미키마우스가 아니다

아이거가 이끄는 디즈니의 외연 확장과 성장은 디즈니의 정체성을 지키자는 절박한 몸부림에서 시작됐다.

1923년 단순 만화제작 업체로 시작한 디즈니는 1955년 디즈니랜드 개장을 통해 사업을 확장했다. 1996년 미국 3대 방송사인 ABC방송을 인수하면서 거대 미디어기업으로 발돋움을 시작했다. 이 획기적인 전환을 이끈 인물은 5대 CEO 마이클 아이스너였다. 하지만 지나치게 재무적 성과에 집착해 디즈니의 가장 큰 자산인 창조성을 소홀히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2004년 월트 디즈니 아들인 로이 디즈니가 벌인 퇴진 운동으로 이사회 의장에서 쫓겨난다.

뒤를 이어 CEO 자리에 오른 아이거의 당면 과제는 단순 명료했다. 디즈니의 창조성을 육성, 발굴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거는 디즈니라는 울타리에 갇혀 있지 않았다. 디즈니에 도움이 된다면 적극적으로 인수합병해 디즈니를 키웠다.

그 첫 대상이 픽사였다. 1990년대 ‘토이스토리’로 전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에 화려하게 등장한 뒤 ‘몬스터 주식회사’, ‘니모를 찾아서’ 등 내놓는 작품마다 흥행과 호평이 잇따른 스튜디오를 2006년 인수해 매너리즘에 빠진 디즈니를 한방에 깨웠다. 이어 2009년엔 마블을, 2012년엔 루카스필름을 인수합병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3월에는 21세기폭스 인수합병 거래까지 마쳤다. 디즈니는 폭스 자산 중 스튜디오 및 TV채널 관련 자산만 인수했다. 몸집 불리기에 급급하지 않고 기존 디즈니 자산과 시너지 효과를 노린 전략적 접근이었다.

아이거는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 아닌 ‘플러스 알파’를 원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재개봉과 리메이크, 그리고 기존 흥행작들의 후속작들이다. 특히 후속작 제작으로 아이거는 큰 재미를 봤다. 2003년 첫 개봉한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 펄의 저주’는 전세계 극장 누계 수익이 6억5000만 달러에 불과했지만 디즈니가 제작한 네편의 후속작을 포함한 총 다섯편의 시리즈 누적 수익은 45억 달러에 달한다. 2010년 ‘토이스토리3’, 2016년 ‘도리를 찾아서’ 등 픽사의 작품을 이어 받아 내놓은 애니메이션도 이전 작품보다 더 큰 흥행을 기록했다.

자연히 폭스 콘텐츠의 후속작에 대한 기대도 높다. 최근 아이거는 2027년까지 디즈니 주요 영화 라인업을 발표했다. 가장 관심을 끈 작품은 역시 전세계 극장 수익 1위 ‘아바타’다. 2009년 개봉해 27억8800만 달러를 벌어들인 ‘아바타’의 후속작은 2021년 말 개봉할 예정이다. 아이거는 ‘아바타’ 시리즈를 5편까지 제작할 계획이다.

물론 아이거가 외부 수혈에만 기대 디즈니를 키운 건 아니다. ‘겨울왕국’과 ‘주토피아’는 디즈니의 명성을 재확인한 명작으로 평가된다. 아이거는 새롭게 탄생한 콘텐츠와 캐릭터를 디즈니랜드로 적극 옮겨왔다. 2020년엔 홍콩 디즈니랜드에 ‘겨울왕국’ 테마랜드가 개장할 예정이며 그 이듬해엔 상하이 디즈니랜드에 ‘주토피아’ 테마랜드가 들어선다. 끊임 없는 콘텐츠 개발과 이를 테마파크로 연결해 관람객을 모으는 선순환은 아이거의 지휘 하에 착착 진행되고 있다. 디즈니랜드가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이용료를 올려왔음에도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다.

또 다른 승부수, 스트리밍 서비스

아이거의 야심은 이제 콘텐츠 유통시장 장악까지 뻗쳤다. 아이거는 네 번이나 은퇴하겠다고 시기를 못 박았지만 연기했다. 앞서 폭스 인수를 마무리한 올해 은퇴할 것이라면서 “이번엔 진지하다”고까지 말했지만 역시나 2021년으로 또 한 번 미뤄졌다. 그가 은퇴를 미룬 가장 큰 이유는 스트리밍 서비스(OTT) 성공을 위해서다.

아이거는 2017년 스트리밍 기술회사인 BAMTech를 인수하면서 OTT 진출 준비를 진행해왔다. 아이거는 CNBC와 인터뷰에서 “BAMTech 인수 성공이 OTT 야욕에 기름을 부었다”고 말했다. 만약 BAMTech를 인수하지 못했다면 폭스 인수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중대한 결정이었다.

이후 2018년 4월 ESPN+를 출시하면서 OTT 시장에 진출했다. 이어 올해 4분기 디즈니+로 본격적인 시장 진입을 예고했다.

디즈니+는 단순한 유통 채널 증가에 그치지 않는다. 막대한 콘텐츠를 가진 디즈니가 독점적 스트리밍 서비스를 구축하면 제작부터 유통까지 디즈니 천하가 되는 것이다.

이는 기존 OTT 강자인 넷플릭스가 직접 콘텐츠를 만드는 것과 움직임은 정반대지만 지향하는 목표는 같다. 넷플릭스가 직접 제작한 연간 700편의 콘텐츠를 자사 OTT플랫폼에서만 공개하는 것처럼 디즈니도 보유한 콘텐츠를 디즈니+를 통해서만 공급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디즈니는 2016년부터 맺어온 넷플릭스와 콘텐츠 공급 계약을 끊었다. 미국 CNBC에 따르면 이 계약을 완전히 끊으면 디즈니는 매년 약 1억5000만 달러의 이익을 포기해야 한다.

아이거는 자신만만하다. 넷플릭스로부터 얻지 못하는 이익은 디즈니+ 유로 구독료로 만회한다는 계획이다. 아이거의 머릿 속엔 2015년 영국에서 선보인 스트리밍 서비스 ‘디즈니라이프’의 실패로부터 배운 교훈이 가득 차 있다. 디즈니라이프는 다른 스트리밍 서비스와 콘텐츠가 중복되는 등 별다른 장점이 없어 소비자들로부터 외면 당했다. 월 사용료를 반값으로 내리는 파격 조치에도 구독자는 늘지 않았다. 지난해 8월 영국의 엔터테인먼트 어플리케이션 가운데 넷플릭스는 1위였지만 디즈니라이프는 40위권에나 간신히 들 정도였다.

디즈니 임직원들이 실패를 말할 때 아이거는 BAMTech를 인수하고, 조직도 스트리밍 서비스에 최적화되도록 개편했다. 또 무조건 새로운 콘텐츠에 목매달기보다 오래된 인기 콘텐츠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포착해 적극 반영했다.

마침내 14일(현지시간) 스트리밍 업체 훌루 경영권까지 손에 넣으며 넷플릭스와 전면전 채비를 마쳤다. 11월 12일 미국을 시작으로 2020년초 서유럽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디즈니+ 서비스를 확장할 계획이다. 월 이용료는 미국 기준 6.99달러다. 넷플릭스 스탠더드 플랜(월 12.99달러)의 절반 수준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디즈니의 진짜 위기가 시작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WSJ은 디즈니+ 지출이 2024년까지 25억 달러 필요할 것으로 추정했다. 예상되는 운영손실은 2020년에서 2022년 사이에 최고조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대부분 콘텐츠 비용일 것이란 게 WSJ의 설명이다. 아이거의 임기는 언급한대로 2021년까지다. 후계자는 아직 안갯속이지만 누가 와도 쉽지 않은 도전이다.

‘라이언킹’도 부러워할 ‘연봉킹’

디즈니 주가가 폭등하면서 아이거도 돈방석에 앉았다. 팩트셋에 따르면 아이거는 디즈니 주식 0.1%를 보유하고 있다. 비율로는 미미하지만 시장 가치로는 1억3400만 달러(약 1500억원)에 달한다.

연봉도 두둑하다. 아이거는 지난해 6600만 달러(약 750억원)를 디즈니로부터 받았다. 급여와 보너스, 주식 배당 등을 모두 합한 것이다. 1년 전보다 무려 80%나 뛰었다. 이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에 포함된 주요 132개 기업 CEO 가운데 최고액이다. 이들의 평균 총보수 1240만 달러(약 141억원)의 5배를 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디즈니를 현재의 반열에 올려 놓은 아이거의 업적을 감안하면 수긍이 되지만 지나치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디즈니 가문의 상속녀 에비게일 대즈니는 “미쳤다”고 일갈했다. 그는 CNBC에 출연해 “예수조차 평균 근로자 임금의 500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버니 샌더스 민주당 대선후보는 “디즈니가 ‘어벤져스’로 벌어들인 수익을 밥 아이거에게 6600만 달러 지불하는데 쓰는 대신 중산층 임금을 받는 모든 직원들에게 줬다면 정말 영웅적인 일이 될 것”이라고 트위터에 남겼다.

반면 제프리 손펠드 예일대 리더십연구 부학장은 아이거가 CEO에 오른 뒤 디즈니의 주가, 일자리 증가 등을 고려해야 아이거의 천문학적 보수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이거는 직접적인 대응은 하지 않았다. 디즈니는 아이거의 보수가 성과에 따라 지급된 것이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김우영 기자/kw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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