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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의 기업가⑥ 이케아 창업자 잉바르 캄프라드] 절약과 혁신을 무기로…‘디자인 민주주의’를 조립한 가구 거인
17살때 창고서 통신판매업체 ‘이케아’ 설립
자체 디자인 조립식가구로 업계 센세이션
제품가격 낮춰 일반소비자 타킷으로 성공

마트가면 할인상품만 구입…평생 근검절약
직원엔 도전 강조·아이디어도 과감히 수용

사후 재산절반 스웨덴 북부 발전기금 기부
극우정당 가입 전력·조세 회피 등 논란도



tvN 예능 프로그램 ‘스페인 하숙’에서 배우 유해진은 목재를 잘라 가구를 직접 만들고 ‘이케요(IKEYO)’라는 브랜드 이름을 붙인다. 훌륭한 배우에서 가구 장인으로 거듭난 그는 ‘이케요 창업주’라는 별칭을 얻으며 새로운 가구들을 선보이고 있다.

유해진의 작명에 시청자들이 웃음을 터뜨린 것은 그것이 특정 브랜드를 본뜬 패러디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특정 브랜드는 단연 스웨덴의 가구 브랜드 ‘이케아(IKEA)’다.

북유럽 작은 마을의 가구 회사가 지구 반대편 국가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패러디될 정도로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한 출발점에는 잉바르 캄프라드(Ingvar Kamprad, 1926~2018년) 이케아 창업자가 있다. 불편하지만 친절하고, 고집스럽지만 이유 있는 캄프라드의 경영 철학과 기업 정신을 알아본다.

▶창고에서 탄생한 세계적 가구 브랜드=스웨덴 남부 스몰란드의 외딴 숲속 마을에서 태어난 캄프라드는 불과 열일곱 살이던 1943년 농장 창고에서 ‘이케아’란 이름으로 처음 사업을 시작했다. 초기 이케아는 연필, 엽서 등 여러 물건을 파는 통신판매업체였다.

당시 스몰란드에서 가구 제작은 농가에서 흔히 하는 부업이었고, 자연스레 이케아도 가구를 취급했다. 부가적이었던 가구 판매가 의외로 성공하자 캄프라드는 가구 디자인, 직접 조립 방식, 광고 등 가구 판매를 혁신할 방법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더 많은 사람에게 좋은 가구를 판매하고자 1951년 이케아 카탈로그를 만들어 주간지에 끼워넣는 방식으로 스웨덴 전역에 배포했다. 1953년엔 첫 번째 전시장을 열었으며 1955년부터는 자체 디자인한 조립식 가구를 선보였다.

1958년 스웨덴 앨름훌트에 문을 연 첫 매장은 현재와 같은 대형 매장의 시초가 됐다. 이후 이케아는 전 세계로 영토를 넓히며 지구촌의 소비자들을 사로잡게 된다.

이케아는 2018 회계연도 말(2018년 8월) 기준 57개국에 422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직원수만 20만8000명이다.

지난해 매출은 388억유로(약 50조원)에 달했으며 웹사이트 방문자는 25억명, 오프라인 매장 방문객은 9억5700만명으로 집계됐다.

▶‘디자인 민주주의’의 꿈=이케아가 국적과 연령, 성별을 막론하고 전 세계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디자인’과 ‘가격’이다. 단순하고 편리한 디자인의 가구를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이 이케아의 특징이자 강점이다. 이는 캄프라드의 창업 정신이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다. 그는 1976년 ‘어느 가구상의 증언(The Testament of a Furniture Dealer)’이란 14쪽짜리 글에서 이케아의 지향점을 명확히 밝혔다.

그는 동료들에게 “많은 사람들을 위해 더 나은 일상을 창조하는 것(To create a better everyday life for the many people)”을 목표로 제시하면서 “이를 위해 디자인이 우수하고 실용적인 광범위한 제품을 낮은 가격에 제공해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우리는 다수의 편에 서기로 했다”며 “고객에게 좋은 것이 장기적으로는 우리에게도 좋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소수만 이용할 수 있는 값비싼 가구가 아니라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가구를 지향한 것이다.

이케아는 자사의 디자인 철학을 ‘민주적 디자인(Democratic Design)’이라 말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우수한 디자인의 제품을 사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디자인과 생활의 민주화를 이루는 것, 캄프라드의 꿈은 지금도 이뤄지고 있다.

▶‘불편’을 파는 기업=캄프라드는 1955년 가구의 부품을 납작한 상자에 담아 부피를 줄인 ‘플랫 팩(flat pack)’과 고객이 제품을 ‘직접 조립(self-assembly)’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완성된 가구를 집에서 배송받는 것이 아니라 고객 창고에서 플랫 팩을 구매해 집으로 가져가 직접 조립까지 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파격 그 자체였다.

캄프라드가 첫 매장을 열었을 때에도 회의적인 시선이 많았다. 숲속까지 찾아와 가구를 사가는 소비자가 얼마나 되겠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이케아로서는 비용을 절감해 상품 가격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이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선 불편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캄프라드의 전략은 통했다. 소비자들은 장거리를 이동해 매장을 방문하고 제품을 직접 조립하는 수고를 기꺼이 감수했다.

경제 전문작가 뤼디거 융블루트는 ‘이케아, 불편을 팔다’란 책에서 이케아의 성공 전략 중 하나로 ‘고객이 함께 일하게’ 만듦으로써 저렴한 가격을 가능하게 한 것을 꼽았다.

캄프라드는 소비자의 기존 패턴에 맞춘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새로운 방식을 제시해 소비자들이 적응하도록 만들었다. 가구업계는 물론 소비자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꾼 것이다.

마이클 노튼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마케팅학 교수와 댄 애리얼리 듀크대 행동경제학 교수는 소비자들이 이케아를 선호하는 이유를 ‘심리적 만족도’에서 찾았다. 조립형 제품을 구매해 손수 조립할 때 완제품을 구입할 때보다 애착과 만족감이 더 높아지는 ‘이케아 효과’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케아의 성공은 이후 수많은 조립식 가구 브랜드가 생겨나고, 기업들이 최종 완성 전 단계의 제품을 판매하게 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절약’과 ‘혁신’=캄프라드는 세계에서 10위 안에 드는 억만장자였지만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근검절약을 실천했다. 1993년 식 볼보 240GL 차량을 15년간 타고 다니고, 옷은 벼룩시장에서 구입했다. 비행기 출장은 가급적 자제하지만 어쩔 수 없이 타야 할 때는 꼭 이코노미석을 이용했다. 식당에 가면 1회용 설탕과 소금을 챙기고, 마트에서 장을 볼 때는 마감 시간에 가서 세일 상품을 구매했다.

이러한 정신은 이케아의 경영 철학에도 반영됐다. 캄프라드는 “자원 낭비는 인류의 가장 큰 병”이라며 “작은 수단, 제한된 자원으로 최상의 결과를 내는 것이 이케아 방식”이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직원들을 일방적으로 옥죄기보다는 도전과 시행착오를 장려했다. 현장의 경험과 다양한 의견으로부터 혁신의 아이디어가 나온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는 직원들에게 “다른 방식으로 일하라. 언제나 ‘왜’라는 질문을 던져라. 우리는 기존의 방식을 따르기보다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며 “실수는 일하는 자의 특권이다. 실수를 두려워하는 것은 조직이 관료화됐다는 근거이자 발전의 적”이라고 말했다.

“시간은 여러분의 가장 중요한 자원이다. 여러분은 10분 동안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한 번 흘러간 10분은 영영 사라져버린다.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 여러분의 삶을 10분 단위로 나눠 관리하고, 가능한 한 이 시간을 의미없는 활동에 허비하지 말아야 한다”는 캄프라드의 당부는 이케아 직원뿐 아니라 많은 현대인들에게도 귀한 조언이 되고 있다.

▶반전의 기업가=지난해 캄프라드가 별세했을 때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위대한 기업가가 떠났다는 의견이 대다수였지만 일각에선 생전에 그를 따라다녔던 논란에 주목했다.

캄프라드는 1973년 이케아 본사를 네덜란드로 옮기고 본인은 덴마크로 이주했다. 이는 스웨덴의 높은 세금을 피하기 위한 ‘꼼수’로 비난받았다.

1989년엔 유럽의 대표적 조세피난처인 리히텐슈타인에 ‘인터로고 재단’을 설립해 17억~22억유로(약 2조2000억~2조7700억원)를 탈세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1940년대 유럽 내 파시스트 정당을 지지한 극우단체인 ‘새 스웨덴 운동(New Swedish Movement)’에 가입한 전력이 문제가 돼 이후 사과를 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스웨덴 내에선 부정적인 시선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케아가 여전히 스웨덴을 대표하는 기업이고 국가 경제에 상당 부분 기여한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사후에 공개된 캄프라드의 유언 역시 반전이었다. 2017년 기준 373억유로(약 48조5000억원)에 달한 자신의 재산 중 절반은 4명의 자녀에게 주고, 나머지 절반은 스웨덴 북부 놀란드의 발전기금으로 기부하라는 내용이었다. 놀란드는 탄광·목재산업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고령 인구와 이민자가 대부분인 지역이다. 캄프라드는 과거에도 이케아 경영진의 반대를 무릅쓰고 놀란드 하파란다에 이케아 매장을 세워 지역 개발에 기여한 바 있다.

캄프라드는 이케아를 자녀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지배구조를 복잡하게 만들어 특정 개인이 소유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기업이 흔들리지 않고 지속되길 바라서다.

구두쇠였지만 쓸 땐 쓸 줄 알고, 누구보다 기업을 먼저 생각했던 ‘천생 기업가’. 캄프라드가 여전히 기억되는 이유다.

김현경 기자/p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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