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금요기획] 요즘 정치인들은 독설에 왜 푹 빠졌을까
-여의도 횡행하는 독설의 정치학, 그 명암
-절박한 상황 놓이자 자극적 언어로 관심끌기
-SNS발언 여과없이 전달되다보니 막말 횡행
-여성정치인도 위상 커지면서 ‘센 발언’ 주도
-전문가 “독설은 양날의 검, 주홍글씨될수도”


[헤럴드경제=이원율ㆍ유오상 기자] 독설시대다. 아니, 독설을 넘은 막말 시대다. 정치권이 험한 말로 얼룩지고 있다. 여야 구분없이 쏟아내는 독설은 마치 쉴새 없이 공이 오가는 탁구를 보는 듯하다.

독설은 시선을 끈다는 점에서 쉬운 정치 방법이다. 하지만 정쟁을 유발하고 스스로 ‘주홍 글씨’를 남긴다는 점에서 막다른 길도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일정 수준의 독설은 ‘사이다’가 될 수 있지만, 도를 넘을 시 ‘신(新) 동물국회’를 부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지금 그 기로에 서 있다는 게 이들의 경고다.

▶막말 폭격 정치인, 일단 관심 끌고 보자?=세월호 참사 5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5일 차명진 전 자유한국당 의원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유가족을 향해 “징하게 해쳐 먹는다(해 처먹는다)”고 했다. 같은 날 정진석 한국당 의원도 “오늘 아침 받은 메시지”라며 “세월호 그만 좀 우려 먹으라고 하라”는 글을 썼다. 이들 모두 논란이 일자 고개를 숙였다.

이런 막말 대다수는 왜 썼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다. 문제는 최근 들어 정치권에서 이같은 거친 입이 줄을 잇는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부터만 봐도 알 수 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정치권에 정신장애인이 많다”(2018년 12월28일) ▷이종명ㆍ김순례 한국당 의원의 “5ㆍ18은 폭동이 민주화 운동으로 된 것”ㆍ“종북좌파가 5ㆍ18 유공자란 괴물집단을 만들었다”(2019년 2월8일) ▷홍익표 민주당 의원의 “(바른미래당은)미니 정당이고 영향력도 없는 정당”(2019년 2월27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은)돈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분”(2019년 4월1일) ▷김문수 전 경기지사의 “촛불을 좋아하더니 온 나라에 산불”(2019년 4월6일) ▷손혜원 무소속 의원의 “(신재민은)나쁜 머리를 쓰며 의인인 척 위장했다”(2019년 1월2일), “니들 아버지는 그때 뭐하셨지?”(2019년 4월9일) 등 헤아리기 힘든 수준이다.

이와 함께 김진태 한국당 의원은 극우 인사로 분류되는 지만원 씨를 두고 “제가 제일 존경하는 지만원 박사님”(2019년 2월8일),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여당세력을 악으로 규정하며 “저를 음해하려는 악한 세력이 있다”(2019년 3월20일)는 등 발언을 해 질타를 받았다.

극단적인 거친 발언은 지지층의 환호를 불러오긴 하지만, 그 이상의 적과 반감을 만든다. 전문가들은 정치인의 ‘관심 받기’ 욕심이 막말 논란을 낳는다고 보고 있다. 정치인은 늘 이름 알리기에 목마르다. 상당수가 하루에도 수십번씩 자기 이름을 검색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주목받고 싶은 정치인은 (자신에게)충성도가 높은 극단 세력 말을 더 들을 수밖에 없다”며 “이들 의견만 듣다보면 주변 사람들이 모두 같은 생각인 것 같은 환상에 빠져 자신감이 생긴다”고 했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정치인은 주로 관심, 매력, 지지 등 3단계로 정치력을 실현시킨다”고 했다. 이어 “그 첫 단계인 관심을 받기 위해 막말 유혹에 빠질 수 있다”며 “관심을 받는 가장 쉬운 길이 자극적 언어 사용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 야당 의원은 “의원들 사이에서 설득력을 얻는 말 중 하나가 이목 끌기에는 ‘노이즈 마케팅’이 가장 좋다는 것”이라고 했다.

총선이 근 1년 남은 가운데 막말 논란이 더욱 불거지는 것 또한 관심끌기의 연장선이라는 분석이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20대 국회 윤리특별위원회가 받은 의원 징계안은 모두 40건이다. 올 1월부터 지난달까지 넘겨진 안만 18건으로 전체 40%가 몰려있다. 황태순 평론가는 “선거가 다가올수록 정치인은 절박해진다”며 “파급력이 큰 말을 하려다보니 위험한 줄타기를 한다”고 분석했다.

SNS 활성화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과거에는 정치인이 입장을 밝히려면 보도자료 배포 혹은 기자회견 개최 등 방법을 활용해야 했다. 지금은 트위터ㆍ유튜브ㆍ페이스북 정치가 가능하다. 언제 어디서든 뜻을 표명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과정에서 정제되지 않은 말이 남발되기 쉽다. 실제로 최근 막말 논란 중 상당수는 SNS에서 불이 붙었다. 정치권 관계자는 “예전에는 정치인의 발언이 언론을 통해 상당히 정제됐다”며 “지금은 이를 다듬어 줄 ‘게이트키퍼’(gatekeeper)의 역할이 옅어졌다”고 했다.

▶위상 커진 여성 정치인, 강한 발언 앞장=최근 여성 정치인의 말이 거칠어진 점도 눈길을 끈다. 남성 정치인의 전유물로 여겨진 호통과 윽박에 여성 정치인도 동참하는 모습이다. 전통적 성 관념에서 벗어난 점은 좋은 현상이다. 다만 이들도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건 마찬가지라는 게 세간의 시선이다.

거침없는 발언의 대표적인 여성 정치인은 추미애 민주당 전 대표,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 등이 꼽힌다.

추 전 대표는 지난 2017년 7월6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당시 국민의당의 ‘증언 조작’ 사태에 대해 “박지원 전 대표, 안철수 전 의원이 몰랐다고 하는 건 ‘머리 자르기’”라고 했다. 이는 국민의당의 국회 보이콧을 부를만큼 파격적인 말이었다. 그는 지난해 5월12일에도 민주당원 댓글 조작사건(드루킹 사건) 특검 도입을 요구하는 한국당과 당시 김성태 원내대표를 향해 “깜도 안되는 특검을 들어줬더니 도로 드러누웠다”며 “빨간 옷을 입은 청개구리당”이라고 맹비난했다.

나 원내대표도 만만치 않다. 그는 지난달 12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작심한 듯 날선 말을 쏟아냈다. 나 원내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란 말을 듣지 않게 해달라”, “정부가 촛불청구서에 휘둘리는 심부름센터로 전락했다”, “정부의 경제정책은 위헌” 등 말을 했다. 이에 민주당은 용납할 수 없는 막말이라며 나 원내대표를 윤리위에 제소했다.

이 의원은 별명부터 ‘여전사’다. 그의 표적에는 문 정부는 물론 같은 당의 손학규 대표도 포함된다. 이 의원은 지난달 20일 유튜브에 출연해 “손 대표가 (4ㆍ3 보궐 선거가 치러지는)창원에서 숙식하는 것은 정말 찌질하다”고 했다. 이 때문에 당 윤리위가 당원권 1년 정지 조치를 하자 그는 “손 대표가 찌질한 게 아니면 뭐냐”, “찌질함의 끝이 어디인지 한심하다”며 뜻을 견지했다.

지금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가 있는 박영선 민주당 의원도 과거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겐 “하늘이 두렵지 않느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이 부회장보다 기억력이 훨씬 좋고 아는 게 많은 전문 경영인에게 경영권을 넘기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하는 등 독설의 여성 정치인의 면모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이는 여성 위상이 커진 데 따른 필연적인 현상으로 분석한다. 다만 여성이라 더욱 잘 활용할 수 있는 ‘소프트 리더십’이 옅어진 데는 아쉬움이 있다는 의견도 내놓는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과거에는 여성 정치인의 존재 자체로 의미를 찾았다”며 “이제 여성 정치인이 남성 정치인 상당수를 이끌고 갈만큼 입지가 강해졌다”고 했다. 이어 “이에 따라 이른바 ‘한국적 리더십’에 맞춰 센 발언도 의식적으로 하는 모습”이라며 “대권 등 야심이 클수록 강도와 빈도도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남성은 잘못하는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부드러운 지도력이 비교적 줄어든 점은 약간 아쉽다”며 “이는 여성 정치인만 갖고 있는 장점”이라고 했다.

여성 정치인의 강한 발언을 지난 2017년 말 수면 위로 떠오른 ‘미투(Me Tooㆍ나도 당했다)’ 운동과 연관 짓는 분석도 있다. 황태순 평론가는 “여성이 더는 침묵을 강요당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그간 지나치게 억눌린데 따른 반사작용이 여성 정치인의 독설과 막말을 부추기는 감도 있다”고 했다.

▶막말과 ‘사이다’ 달라…주홍글씨 가능성=우리 정치사에서 험한 말의 역사는 길다.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도 자신의 뜻을 쉽게 알리기 위해 자주 활용했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1979년 신민당 총재로 당선된 후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다. 또 1993년 당시 군부의 가장 큰 인맥인 하나회를 해체할 땐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고 했다. 원색적인 표현이지만, 막말 아닌 소신 발언으로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험한 말은 목적 달성에 실패했다. 처음에는 속이 시원하다고 박수 받은 말도 시간이 지나면 발목을 잡는 ‘주홍글씨’가 되기 일쑤였다.

김홍신 전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신) 의원은 지난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은 거짓말을 많이 해 공업용 미싱으로 입을 박아야 한다”고 해 파문을 일으켰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2004년 연극 ‘환생경제’를 통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을 빗댄 극중 인물 ‘노가리’를 향해 원색적인 욕을 하며 논란만 만들었다.

홍익표 민주당 의원은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귀태(鬼胎)’라고 말해 비난 받았으며, 현재 충남 지사인 양승조 민주당 의원은 같은 해 “박 대통령은 (암살)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국민 경고를 새겨들어야 한다”고 밝혀 정치판에 파문을 일으켰다. 현역인 홍 의원과 양 지사에겐 지금도 ‘막말 논란’이 꼬리표로 따라붙고 있다.

전문가들도 이런 점을 염려한다. 당장 ‘사이다’의 유혹에 빠져 씻을 수 없는 멍에를 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최진 원장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강한 말을 한 데도 논란이 없었던 것은 인신공격이나 국민 정서에 반하는 말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지금 정치인은 일단 잘되고 보자는 생각에 이를 간과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특히 지도자가 되려면 막말보다는 감성적인 말을 해야 한다”며 “지금처럼 여야 대립이 치열할 땐 남녀불문하고 부드러운 리더십이 주목을 받는다”고 했다.

황태순 평론가는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의 사례도 좋은 참고 사항”이라며 “홍 전 대표도 톡톡 튀는 말로 주목을 받고 대선주자도 됐지만, (막말이)대권을 위한 행보에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했다.

센 발언이 정치 불신을 심화시킨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김형준 교수는 “(정치인이)자신은 이런 말도 할 수 있다는 등 막말과 함께 과시적인 태도를 보일 때가 있다”며 “대부분 자기 지역구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함과 동시에 (지지층의)외면을 부른다”고 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극단 세력을 뺀 건전한 80~90% 국민은 막말에 칼춤 추는 여야 모두를 정상으로 보지 않는다”며 “낮은 투표율을 이끌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해결책은 인식 변화와 제도 개선이다. 정치인은 조급증을 버리고 긍정의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 근시안적 태도를 버려야한다는 것이다. 이후 과감한 개혁에 앞장서야 한다는 게 전문가의 진단이다.

김형준 교수는 “가장 좋은 예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필라델피아 연설”이라며 “인신공격, 남을 헐뜯는 표현 하나 없는 긍정적 표현으로 대중을 감동시켰다”고 했다. 그는 또 “해외 여러 나라처럼 당 지도부가 아닌 국민이 공천권을 갖고 낙선 운동도 할 수 있어야 보다 품격을 지킬 것”이라고 했다.

yul@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