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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박원순의 재건축학개론이 부를 나비효과
“많은 사람들이 ‘층고를 높여 달라’, ‘용적률을 높여 달라 합니다. 제가 피 흘리고 서 있는 것 안 보입니까”(박원순 서울시장ㆍ4월8일 ‘골목길 재생 시민정책대회’ 인사말 중)

“박 시장이 피를 흘린다고 하는데, 우리는 피를 토한다고 해주세요”(서울 잠실 주공5단지 조합ㆍ4월9일 서울시청 앞 집회에서)

서울 강남 대단지 재건축 아파트 사업승인을 놓고 박 시장과 조합 사이에 격한 말이 오가고 있다. 얼마나 맘고생이 심하면 ‘피를 흘리고’, ‘피를 토하는’ 심정이라고 했을가.

박 시장은 지난 10일 KBS의 한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지난해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부동산 가격을 지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은 (강남 재건축 인가가)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여의도·용산 통개발을 언급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강남 재건축이 자칫 투기 수요에 불쏘시개가 되지 않을가 노심초사하는 걸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박 시장의 ‘강남 스톱’ 통보에 잠실 주공5단지, 대치동 은마 등 지은지 40년이 넘은 노후아파트 조합원들은 그동안 서울시 가이드라인을 고분고분 따랐는데 이제와서 딴 소리하는 것은 ‘행정갑질’이라며 격분하고 있다. 실제로 주공5단지는 시의 국제설계공모 제안을 수용, 지난해 6월 설계안을 채택했다. 은마는 시가 요구한 35층 규제 등 계획변경을 모두 이행했다. 이들 조합은 “21세기에 한 세기 전 아파트에 살면서 언제까지 낡은 배관에서 흐르는 녹물을 마셔야 하느냐”며 울분을 토하고 있다.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은 그의 책 ‘부동산은 끝났다’에서 “부동산 정책은 그 자체가 정치이기도 하다”고 했다. 재건축을 둘러싼 박 시장과 조합 측의 대립은 이제 경제 논리 보다는 정치·사회적 영역으로 옮겨갔다. 대선가도로 향하는 박 시장의 발걸음은 ‘재임시 서울 집값 안정’ 카드를 결코 내려놓을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시장의 수요를 거스른 획일적 규제는 시장의 역습을 받게 마련이라는 사실이다. 박 시장의 ‘강남 스톱’ 발언은 강남에 새 아파트 공급이 부족해질 것이라는 의미로 읽혀 이 곳 신축 아파트 가격의 급등을 불러온다. 재건축 암흑기에 살아남은 기존 아파트도 당연히 몸값이 뛰어오른다. 이전 노무현정부도 재건축을 옥죄었지만 2003년 2월부터 2006년 10월까지 서울 재건축 단지는 99%나 치솟았다.

안전진단 강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부활 등의 규제가 본격 적용된 지난해 서울에서 새로 인·허가를 받은 아파트는 3만2848가구로 전년(7만4984가구)에 비해 절반 이상 줄었다. 통상 인허가 후 3~4년이 지난 시점에야 아파트가 분양되는 점을 감안하면 공급 축소에 따른 집값 불안이 다시 가중될 수 밖에 없다.

부동산 정책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요체는 공급 확대 가능성을 항상 열어둬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닫아두면 언젠가 규제를 풀어야 할 때 위험이 한꺼번에 닥친다. 박원순의 재건축학개론이 이 점을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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