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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완전한 자유주의, 완전한 실패를 부르다
정치학자 드닌, 예일대 시리즈 두번째
불평등·획일화·자유침해 등 폐해 만연
“자유주의 속성·본질이 원인” 주장
사적 이익에만 집중 ‘공동선 붕괴’ 불러
‘희생·배려’ 공동체 문화 실천이 대안

“자유주의 프로젝트는 궁극적으로 자기모순이며 결국 자신의 토대인 도덕적 자원과 물질적 자원의 고갈로 귀결된다는 나의 생각이 옳다면, 우리는 한 가지 선택에 직면해 있다. 우리는 지역에 더 중점을 두는 자치의 형태를 자진해서 추구할 수 있다.”(‘왜 자유주의는 실패했는가’에서)

“자유주의는 실패했다.”

정치학자 패트릭 J. 드닌 노터데임대 교수가 ‘왜 자유주의는 실패했는가’(책과함께)에서 선언한 이 급진적인 주장은 각 정부의 정책실패를 얘기하는 게 아니다. 자유주의 그 자체를 겨냥한 것이다. 즉 자유주의의 본질, 정체성, 근본 전제인 개인의 자율성이 가져온 자유주의의 종말이다. 지구상의 거의 모든 국가가 채택한 유일한 이데올로기인 자유주의의 은퇴를 선언한 책은 좀 충격적이다.

드닌은 오늘날 자유주의의 병폐로 얘기되는 불평등과 획일화, 정신적 퇴폐, 자유의 침해 등은 자유주의가 자신의 목적을 잘 수행할 수록 오히려 더 나빠진다고 말한다. 자유주의의 폐해가 바로 자유주의 성공의 증표라는 것이다.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개인의 야망을 잘 펼칠 수 있도록 자유시장체제를 갖춘 자유주의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드닌의 이 책은 예일대 출판부의 ‘정치와 문화’시리즈 두 번째 책으로, 이 시리즈는 21세기 자유민주주의가 정당성 위기를 맞았다는 진단에서 출발한다. 부의 분배의 왜곡, 시민단체, 노동조합, 가족 등 전통적인 제도의 쇠퇴, 정치와 종교, 과학, 언론 등 권위와 시민들 자신의 신뢰 상실, 진보에 대한 환멸 등 병폐가 심각해진 데 따른 것이다. 트럼프의 당선이나 브렉시트, 프랑스의 노란조끼 시위 등 전문가들조차 당혹스런 선거결과와 사회현상은 믿었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반발로 풀이된다.

드닌은 바로 이런 정당성 위기의 근원을 자유주의의 속성에서 찾는다. 현 자유주의의 문제는 제도를 잘못 운용한 게 아니라 개인의 자율성을 고양한 것이 처음부터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런 주장은 급진주의자보다 한발 더 나간 것으로 학자들의 비판을 불러왔다. 특히 자유주의 철학에서 태어난 현대 미국인들에겐 거부감이 크다. 


드닌에 따르면, 자유주의의 병폐 중 하나는 사회와 시민을 좀먹는 자기이익이다. 자기이익은 공동선에 호소하는 모든 주장을 무력화해 일종의 제로섬 게임 사고방식을 유도한다. 그 결과 시민들은 사적이고 물질적인 관심사에 점점 더 집착해 결국 양극화를 빚게 된다.

자유주의의 보다 근본적인 모순은 자유주의의 확대에 따라 개인의 자율성이 커갈수록 실정법을 통해 행동을 규제할 국가의 역할이 커진다는 점이다. 가족, 종교, 학교, 마을, 공동체 등 비공식적이고 규범으로 행동을 통제해온 전통적인 공동체와 관계로부터 개인이 해방됨에 따라 실정법을 통해 이들의 행동을 규제해야 할 필요성이 생기게 된다. 자율성의 영역을 더욱 완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중앙집권화된 감시와 경찰, 교도소의 확대 등과 같은 국가 역할이 커지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것이다.

개인과 국가의 자유와 권력의 확대재생산이라는 순환구조에서 문화해체는 가속화한다. 공동체의 유산에서 자라나는 음악이나 미술, 이야기, 음식 등의 문화는 시장조사를 마친 뒤 대중 시장에서 포장 판매하는 상품으로 소비된다. ‘경작하다’란 뜻에 맞게 인간이 자라고 꽃을 피우는 토양인 문화는 뿌리를 알 수 없고 획일적인 반문화로 대체된다.

이는 교육의 토대까지 흔들고 있다. 저자는 자유의 함양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개인의 욕구와 기술적 지배라는 목표에 종사하는 노예로 만들고 있다고 경고한다.

이를 해결할 드닌의 대안은 단순히 제도를 고치는 것 이상이다. 체제의 파산을 경험하고 있다면, 더 근본적인 변혁이 불가피하다는 쪽이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자유주의의 반대를 제안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혁명적 질서를 뒤집으려는 정치혁명은 무질서만 초래할 뿐이라며, 지역 기반의 문화적 저항을 제안한다. “이론보다는 실천에, 자유주의적 반문화에 맞서 회복력 있는 새로운 문화를 건설하는 활동”이다. 즉 공동체의 문화, 배려의 문화, 희생의 문화, 소규모 민주주의의 문화를 장려하는 실천이다. 이를 통해 거꾸로 새로운 이론이 나올 수 있다고 저자는 내다본다.

드닌이 이 책을 마무리한 것은 2016년 미 대통령 선거를 치르기 3주전이며, 주요 주장들은 브렉시트나 트럼프 대통령을 생각할 수 없었던 10년에 걸쳐 숙성시켰다.

정치·경제·사회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각 정부가 애쓰고 있지만 더욱 악화돼가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드닌의 경고는 논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어 보인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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