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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소년 낙태 리포트] 첫경험 평균나이 13.6세…임신 청소년은 통계조차 안잡혀
대한민국 ‘청소년 낙태 리포트’

헌재 위헌 선고 앞두고 실태 조명
부모에게 쉬쉬…70%가 중절수술
비용 구하려 몰래 대출까지 받아
절반 가까이 피임 모르거나 외면
전문가 “도움센터 조속히 마련을”


헌법재판소가 오는 11일 낙태죄 위헌 여부를 선고한다. 임신부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과 태아의 생명권 존중 차원에서 낙태죄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 첨예하게 맞선다. 이러는 사이 정작 소외된 곳은 따로 있다. 청소년들의 임신이다. 청소년들의 첫 성관계 연령은 점점 낮아지고 그에 비례해 청소년들의 임신 사례는 늘어난다. 그러나 청소년 임신 문제은 관련 통계조차 없다. 헤럴드경제는 ‘있지만 없는 것’으로 외면받는 10대 청소년들의 임신과 낙태 실태, 그리고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제언을 시리즈로 조명한다. <편집자주>


#1. “부모님은 물론 친구한테도 말 못해요. 남자친구와 잠자리했다는 것 자체를 비난할텐데 임신까지 했다고 하면…”

고등학교 3학년 때 임신중절 수술을 했던 김 모(25) 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남자친구에게도 일주일이 지난 뒤에야 용기를 내 말했다. 비용문제는 또다른 문턱이었다. 남자친구가 대출까지 받은 뒤에야 수술비 100만원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는 “그때 얼마나 내 몸이 망가졌을지 생각하면 너무 속상하다”고 말했다.

#2. “고등학생 10명중 8명은 (남자와 잠자리를) 해봤다고 보면 돼요. 빠르면 중학교이고요.”

지난달 일산 킨텍스에서 여고생 20여명이 모였다. ‘성(性) 이야기’는 봇물터지 듯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진실게임의 단골 질문이 “(성관계) 해본 적 있냐”는 것이라고 했다. 있지만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 청소년의 성이다. 특히 청소년 임신의 경우 사회적 낙인, 수술비용, 학업중단 문제로 비화된다. 여고생들은 청소년들의 성관계와 임신에 대해 “어른들만 모르는 얘기”라고 했다.

어른들이 애써 외면하고 싶은 이야기, 아이들끼리만 공유하는 이야기. 청소년 임신과 낙태 문제를 이제는 양지로 끌어내 상처를 치료하고 본격적인 대책과 해법을 제시해야할 때가 됐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 청소년의 성관계 평균 연령은 점점 낮아지고 있는 추세이지만 피임에 대해서는 여전히 무지한 경우가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청소년끼리의 성관계와 임신중절은 현재까지 유의미한 통계조차 없었다. 그만큼 정부의 지원과 관리가 이뤄지지 않는 ‘사각지대’였다는 의미다. ▶관련기사 3·9면

청소년의 성관계는 이미 중학생 나이대부터 이뤄지고 있다. 교육부ㆍ보건복지부ㆍ질병관리본부가 2018년 청소년 6만4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제14차(2018년) 청소년 건강행태조사 통계’에 따르면 성관계 시작 평균 연령은 만 13.6세였다. 성관계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청소년은 전체의 5.7%였다.

문제는 청소년의 낮은 피임실천율이다. 같은 조사에서 청소년 피임률은 59.3%에 그쳤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를 보면 청소년은 ‘피임 도구를 준비하지 못하거나’(49.2%) ‘상대방이 피임을 원하지 않아서’(33.1%) 피임을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성관계를 하는 연령이 낮아지는 가운데 피임을 지키지 않는다면 청소년 임신율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청소년 임신 경로는 다양하다. 크게 ▷이성친구와의 성관계 ▷성폭행 피해 ▷즉석만남 ▷성매매 등 네가지로 분류된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12년 발표한 ‘청소년 한부모의 발생과정에 따른 예방 및 지원정책 연구’ 에 따르면 청소년 성관계는 애인이나 이성친구 뿐 아니라 즉석만남, 성구매 등을 통해서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한 청소년단체 관계자는 “청소년 임신은 소수의 일탈 행동이라고 보는 시선이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라며 “좋아하는 이성친구와 피임 없이 성관계를 맺다가 임신하는 경우도 많고, 요즘은 인터넷 조건만남 등이 발달해 모르는 사람과 성관계를 맺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청소년 임신중절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올해 2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2011년 조사 이후 7년 만에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를 발표했지만 청소년에 대한 조사는 미흡했다.

조사 대상 중 19세 이하 인공임신중절 경험자는 13명에 그쳤다. 오래된 통계지만 대한가족계획협회가 1996년 실시한 조사에선 한해 시술되는 150만건의 인공유산 중 1/3이 십대청소년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나마 가장 최근 연구로는 이동윤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 연구팀이 발표한 2013∼2015년 ‘청소년건강행태 온라인조사’다. 조사에 따르면 성경험이 있는 여학생 중 0.2%는 임신을 했고, 임신한 경험이 있는 여학생 중 73.6%는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했다.

하지만 실제 임신을 하고 임신중절을 경험하는 청소년의 수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의 중론이다. 현행법상 임신중절 수술은 불법으로 규정돼 있기 때문에 음성적으로 이뤄지는 수술은 통계에서 누락될 수밖에 없다.

이는 한국 사회가 10대의 성관계와 임신, 출산에 대해 철저히 부정하는 태도를 취해왔다는 의미다. 사회복지 정책에서도 이들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전문가들은 임신 청소년을 음지에서 양지로 꺼내는 게 급선무라고 지적한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청소년 시기는 이성에 대한 관심이 많을 때인데 사회적으로 쉬쉬하고만 있다. 지금처럼 ‘청소년은 절대 안돼’만 있는 사회에서 청소년들은 도움을 청하기가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정세희·성기윤 기자/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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