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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200쪽 낙서’…다빈치의 천재성 비밀을 따라가다
스티브 잡스의 전기작가 월터 아이작슨
레오나르도 다빈치 ‘코덱스 레스터’ 연구

낙서·도안·수학·일정 뒤섞인 ‘문서파일’속
남다른 호기심·치열한 관찰자 모습 보며
인간 다빈치의 ‘창의성’ 입체적으로 조명


“다양한 분야의 패턴을 알아보는 본능과 더불어, 레오나르도는 과학 연구에 유용한 두 가지 능력을 발전시켰다. 그것은 병적이라 할 만큼 잡다한 호기심과 무섭도록 극성맞고 날카로운 관찰력이었다. 레오나르도의 다른 부분들이 대체로 그렇듯, 이 두 가지도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레오나르도 다 빈치’에서). 이미지는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사진 왼쪽)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노트. 이윤미기자@heraldcorp.com

스티브 잡스는 2010년 혁신적인 제품, 아이폰 4 를 발표하면서 프리젠테이션의 극적인 순간에 도로 표지판 두 개를 화면에 띄웠다. ‘인문학’과 ‘테크놀로지’ 표지판이 교차하는 장면으로, 잡스는 이를 애플의 철학이라고 소개했다. 잡스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영웅으로 삼았는데, 애플의 철학 역시 레오나르도에서 가져왔다. 잡스는 “레오나르도가 예술과 공학 양쪽에서 모두 아름다움을 발견했으며 그 둘을 하나로 묶는 능력이 그를 천재로 만들었다”고 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창의적인 천재로 불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아인슈타인처럼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정식 학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르네상스 시대 전문직 종사자들의 공용어인 라틴어를 읽지 못했고, 복잡한 나눗셈도 할 줄 몰랐다.

그의 천재성, 창의성은 전기작가 월터 아이작슨에 따르면, 범접하기 어려운 초인적인 두뇌 같은 종류의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향상시킬 수 있는 능력, 이를테면 호기심이나 치열한 관찰력에서 나온 것이었다. 호기심의 대상은 예술과 과학, 인문학, 기술 등 다방면에 미쳤고, 상상력은 이들을 경계없이 넘나들었다. 정사각형과 원 안에 팔다리를 활짝 뻗은 완벽한 비율의 남자를 그린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은 과학적 정교함과 예술의 아름다운 결합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그의 사후 500년동안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줬다.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쓴 작가 월터 아이작슨이 이번엔 다빈치가 남긴 7200페이지 분량의 노트를 연구, 그의 천재성의 본질에 다가갔다. 베테랑 전기작가가 그려낸 두툼한 전기 ‘레오나르도 다빈치’(아르테)는 레오나르도의 인간적인 면모를 가장 잘 아울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이작슨은 책을 쓰게 된 출발점이 레오나르도의 노트였다고 밝혔다. 바로 ‘코덱스 레스터’라 불리는 7200쪽 짜리 노트다. 기록과 낙서, 그림, 도안, 스케치, 수학계산 등이 빼곡이 섞여있는 노트를 보고, 아이작슨은 역사상 가장 훌륭한 호기심의 기록현장 ‘창조적 응용의 기록’이라며, 감탄했다. 이 노트는 레오나르도가 기록한 전체 분량의 4분의 1 정도로 추정된다. 페이지의 가장자리까지 꽉 채워 쓴 노트는 다양한 분야의 내용이 뒤죽박죽 섞인 채였다. 몇 달 전, 몇 년 전 작성한 페이지로 되돌아가 내용을 다듬는 등 요즘으로 치면 문서 파일이라 할 만하다.

노트에는 해야 할 일 목록도 들어있는데, 그날 배우고 싶은 것들을 적은 내용이 흥미롭다. ‘밀라노와 밀라노 교외의 크기를 측정하기’ ‘수학 잘하는 사람을 찾아 삼각형과 같은 면적의 정사각형 작도하는 법 배우기’ ‘포병 잔니노에게 페라라의 탑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물어보기’ ‘베네데토 포르티나리에게 플랑드르 사람들은 어떻게 얼음 위를 걷는지 물어보기’ 등 숱한 물음 목록이 들어있다. 몇 년에 걸쳐 자신이 해야 할 일과 배워야 할 것들의 반복적인 목록은 레오나르도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개 중엔 거위의 발 관찰하기, 딱따구리의 혀 묘사하기, 돼지 허파에 바람을 넣어 너비만 부풀어 오르는지, 너비와 길이가 함께 부풀어 오르는지 관찰하기 등 기상천외한 것들도 있는데, 어떤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호기심에서 였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레오나르도는 경이로운 시선으로 자연을 바라보고 진정한 관심을 가진 것이다.

관찰하기는 단지 대상을 바라보는 게 아니다. 레오나르도는 체계적으로 관찰했다. 가령 새가 올라갈 때와 내려갈 때 속도가 같은지 알아내기 위해 단계적으로 관찰했다. ‘먼저 바람의 움직임을 파악한 다음, 새가 어떻게 날개와 꼬리의 단순한 균형 조절만으로 바람 속에서 움직이는지 설명하라’는 식이었다.


그리고 직접 실험을 통해 확인하고자 했다. “더 진행하기에 앞서 나는 몇 가지 실험을 할 것이다. 먼저 실험을 한 다음에 왜 그런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 추론하는 것이 나의 방식이다.”고 관찰노트에 적었다. 이런 경험적 방법은 한 세기 이후 나온 베이컨과 갈릴레이의 과학 연구 방법의 전조라 할 만하다.

그러나 아이작슨은 레오나르도의 가장 특징적인 재능은 관찰력과 상상력을 결합해 전달하는 능력이라고 평가한다. 경험에 기반한 지식을 신뢰했지만 동시에 판타지 속으로 빠져들었고 상상력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경이로움을 마음껏 즐겼다며, 그 결과 그의 의식은 현실과 판타지를 가르는 흐릿한 경계를 이리저리 넘나들며 춤을 출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500년전 르네상스맨 레오나르도는 오늘날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아이작슨은 15세기는 발명, 모험, 신기술을 통한 지식 전파의 시대였다며,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와 비슷했기 때문에 그에게서 배울 점이 많다고 말한다. 예술, 과학, 기술, 상상력을 결합하는 그의 능력은 예나 지금이나 뛰어난 창의성을 위한 공식이라는 것이다.

이와함께 그가 사생아, 동성애자, 채식주의자, 왼손잡이였다는 사실도 공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다른 도시와 달리 포용적이었던 당시 피렌체는 레오나르도가 꽃피울 수 있는 토양이 됐다. 특히 레오나르도의 집요한 호기심과 실험정신, 기존지식을 단순히 수용하는 것을 넘어 의문과 반론을 제기하는 자세는 오늘날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 할 만하다.

아이작슨의 전기는 레오나르도에 관한 권위있는 연구와 희귀하고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작가의 오랜 내공이 어우러져 인간 레오나르도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책 머리에는 작가가 도움과 조언을 받은 이들의 화려한 면면을 열거해 놓았는데 전기가 갖춰야할 미덕을 보여주는 방증자료라 할 만하다. 

이윤미 기자/me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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