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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자영업 공화국의 허상…두번째 이야기
“밟고 올라 갈 사다리는 바라지도 않는다. 밑으로 미끄러지지만 않기를 바라는 데 그마저도 쉽지 않다” 얼마 전 술자리에서 친구가 내뱉은 푸념이다. 언제든 현재의 위치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위기감, 그리고 밀려난 뒤에는 뚜렷한 대안이 없다는 것, 동네에서 치킨집이라도 차려야 하나 주판알을 튕겨보지만 도통 답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잘못된 답이라고 해도 조만간 ‘암울한 자영업 기차’에 자신도 탑승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얘기도 덧붙였다. “먹고 살 방법이 없어서…”

중소벤처기업부가 최근 내놓은 ‘전국 소상공인 실태조사’를 보더라도 어쩔 수 없이 자영업에 뛰어드는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창업에 뛰어든 이유로 응답자 10명 중 7명(67.6%)이 ‘창업 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생계형)’를 꼽았다. 사업전환 시 애로사항을 묻는 질문에도 50.7%가 ‘경제활동(생계유지) 문제’를 들었다.

한국의 자영업 공화국은 임금노동시장에서 퇴출된 인력들이 비자발적으로 들어가면서 비정상적으로 커졌기 때문에 만들어진 허상이라는 얘기다. 번듯한 ‘사장님’ 소리가 듣고 싶어서, 아니면 월급쟁이 생활이 아니꼬와서 자발적으로 선택한 이들 보다는 울며 겨자먹기로 ‘사장놈’으로 밀려난 것이다. 모 대기업에 다니는 한 친구 녀석도 몇년 전 퇴직학교에 다녀와선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버텨라. 밖은 시베리아보다 더 춥다”

빈약한 사회안전망은 밟고 올라갈 사다리는 커녕, 급경사의 미끄럼틀만 안겨주고 있다. 회사를 그만두더라도 더 좋은 일자리로의 이전이 가능해야 하는데, 국내는 그렇지 못하다. 절벽이다. 수치만 놓고 보면 국내 자영업자 비율은 계속해서 줄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1997년 36.81% 였던 자영업자 비율은 이듬해 38.33%까지 치솟았다가 이후 쭉 내림세를 보여 2017년에는 24.41%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자영업자 비율은 OECD 평균(약 15%)을 크게 웃돌고 있다. 그리스(34.1%) 처럼 관광산업이 발전해 서비스 자영업이 성장한 것도 아니다.

“(자영업이) 우리 경제의 가장 아픈 손가락 중 하나”(이낙연 국무총리. 2018년 8월 2일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 발언)라고 하지만,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영세 자영업자들의 소득을 뜻하는 ‘가계 영업잉여’는 2007년 마이너스 8.2%로 역신장했고, 이후 0~2%대 성장률에 그치고 있다. 최근 한반도를 배회하고 있는 자영업 위기론이라는 유령은 그래서 찬찬히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포화한 시장에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모든 것을 무섭게 빨아들이고 있는 온라인으로의 이동, 로봇과 무인화가 일상이 된 4차산업혁명 앞에서 사장놈으로 밀려난 미생(微生)들은 또 다시 자영업 열차에서도 하차할 처지에 놓였다. 그런데 문제는 하차 이후의 미래가 없다는 게다.

얼마 전 한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정부가 아픈 손가락인 자영업을 구조조정 하기 위해 고단수의 칼을 빼들었다는 분석 아닌 분석도 떠돌고 있다고.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을 두고 한 말이다. 이런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빈약한 사회안전망과도 무관치 않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최근 ‘유연안전성’을 주문한 대목을 허투루 봐서는 안된다. 노사관계의 유연성과 함께 취약계층의 안정성을 높이지 않고서는 자영업 공화국의 허상만 계속될 뿐이다. 

한석희 소비자경제섹션 컨슈머팀장 hanimom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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