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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 광장-김준형 의사 칼럼니스트] 좌절, 도피, 그리고 MDMA
1912년 독일의 제약회사 머크(Merck)에서 실험을 하던 도중 우연히 새로운 물질을 합성했다. MDMA이라 불린 이 물질은 식욕억제와 행복감을 만들뿐 아니라 친밀감을 만들어내는 효과도 있었다. 1914년 머크는 이 물질을 식욕억제제로 특허를 얻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이 터지는 바람에 MDMA는 일반에 시판되지도 못 했다. 전쟁이 독일의 패전으로 끝나자 독일이 개발했던 약제들은 연합군의 손에 넘어갔다. 1953년 미 육군에서는 화학무기를 만들기 위해서 MDMA로 실험을 시작했다. 그런데 MDMA를 투여 받은 실험동물들에게서 무척 행복해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미 육군은 이 물질을 도저히 무기로 사용할 수가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실험을 중단했다.

이렇게 사라지는 듯 했던 MDMA는 1976년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미국의 화학자 알렉산더 슐긴(Alexander Shulgin)이 MDMA의 재합성에 성공한 것이다. 그는 이 약을 심리상담사들에게 사용해 볼 것을 권했다. 약을 투여해본 심리상담사들은 놀라운 효과를 경험할 수 있었다. 특히 친밀감을 만들어 내는 효과 때문에 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부부의 치료에 많이 이용되었다.

이 때부터 MDMA는 공감이라는 뜻의 ‘엠퍼시(empathy)’로 불리게 되었다. 하지만 70년대 후반 젊은이들이 MDMA를 남용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젊은이들은 댄스파티에서 MDMA를 먹고 미친 듯이 춤을 추었다. MDMA는 ‘황홀감’이라는 뜻의 ‘엑스터시(extasy)’로 이름이 다시 바뀌었다. 이 때부터 무서운 부작용이 나타났다. 약효가 떨어지면 사람들은 공포스러울 정도의 우울감에 시달렸다. 약에 취해 미친 듯이 춤을 추다가 탈수와 체온 상승으로 사망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동물실험에서 뇌세포가 파괴되는 현상이 발견되었고 기억력이 떨어지는 현상도 보였다. 결국 미국에서는 1985년 엑스터시를 불법 마약으로 분류하고 사용을 금지 시켰다.

최근 강남의 클럽 ‘버닝썬’에서 마약이 유통되었다는 의혹이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강남의 다른 클럽에서도 마약이 유통된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마약은 인간의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파괴한다. 뿐만 아니라 중독성이 강하고 일단 중독이 되면 치료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어떻게 해서라도 마약이 대중에 퍼지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그런데 마약을 단속만으로 막을 수 있을까? 중국에 아편이 퍼진 때는 청나라 말기, 관료들의 부패가 극에 달했을 때였다. 미국에서 마약이 성행한 때는 젊은이들이 기성세대와 극심한 갈등을 겪을 때였다. 왜 이런 상황에서 마약이 성행하게 될까? 고통스런 사회적 환경은 사람들에게 좌절감을 맛보게 한다. 그런데 좌절감이 끝없이 이어지면 사람은 도피하려고 한다. 이때 마약은 행복한 도피처가 된다. 결국 꿈이 사라진 세상에서는 그 자리를 마약이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젊은이들을 보면 꿈과 희망을 빼앗겨 버린 바람 빠진 풍선과 같은 모습이다.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만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때 한번 좌절을 느끼게 된다. 좌절을 딛고 열심히 공부하지만 이번에는 취업전선이 가로막고 있다. 또 한번 좌절하게 된다. 조그만 식당이라도 해 보고 싶지만 지금의 자영업 상황은 녹록치 않다. 이렇게 좌절감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나마 우리 젊은이들이 착하기 때문에 마약이 많이 성행하지 않은 것이라고 하면 지나친 주장일까?

마약에 빠진 사람들을 위해 변명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 기성세대도 이런 세상에 대한 책임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젊은이의 간절한 꿈이 ‘공무원’인 나라에서 무슨 희망과 미래를 이야기 할 수 있겠는가? 다행히 아직은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바꿀 수 있다. 우리는 젊은이들이 꿈과 희망을 품고 달릴 수 있는 운동장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들이 자신의 일에 몰입하고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것이 세상을 건강하게 만드는 길일 것이다.

김준형 의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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