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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성공한 미투, 실패한 미투
“정신적 충격으로 매일 악몽에 시달리고 있지만 제2, 제3의 피해자가 생기는 걸 우려해 용기를 냈다.”

두 달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의 ‘미투’(#Me Too) 폭로가 새해 벽두를 뜨겁게 달궜다. 서지현 검사가 지난해 1월 검찰 내부통신망에 자신의 성희롱 피해 사실을 올리면서 촉발한 ‘미투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다 잠잠해지던 때였다. 심석희는 조재범 전 코치의 상습상해 사건 항소심 2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날, 그를 경찰에 고소했다. 고소장에는 그가 2014년 여름부터 조 전 코치에게 수차례 성폭행과 강제추행을 당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2014년 당시 심석희는 만 열일곱살의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성폭행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 두 달전까지도 계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쇼트트랙 간판스타이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미투 폭로는 전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체육계의 폐쇄적인 도제식 교육 시스템 속에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 가장 먼저 나왔다. 뒤이어 특단의 대책과 엄단을 촉구하는 목소리들이 쏟아져 나왔다. 관련 부처와 체육계는 앞다퉈 성폭력 전수조사 방침을 밝혔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는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처벌 수위를 강화하고 특별조사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체육회도 선수촌 내 훈련장·경기장의 CCTV, 라커룸의 비상벨 설치 등을 뒷북 대책으로 내놨다. 해외에서도 주목했다. 미국 CNN은 심석희 사건을 언급하며 “한국의 미투운동이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미투운동을 촉발한 서지현 검사나, 다시 불을 붙인 심석희 사례는 모두 ‘성공한 미투’에 속할까.

심석희는 성폭행 피해 사실을 굳이 알리지 않을 수도 있었다. 성폭력을 당한 많은 여성들이 분노와 수치심, 절망과 자괴감 속에 침묵을 택했듯이, 심석희도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또다른 피해자가 생기는 걸 막기 위해 용기를 냈다”고 담담하게 전했다. 그러나 법과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서서히 잦아들고 있다.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문체부와 체육회는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 없이 어물쩍 사태를 넘겼다. 전직 유도선수 신유용 외에는 추가 폭로를 예고했던 선수들이 모두 입을 닫았다. 미투 관련 법안은 여전히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그러는 동안 인터넷상에선 ‘2차 피해’가 우려되는 글들이 스멀스멀 기어나오고 있다. 정부의 울림없는 대책이 공전하는 사이, 인생을 건 용기있는 목소리가 또다시 상처받고 침묵하고 있다.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111년 전인 1908년 이날, 뉴욕 럿거스 광장에 1만5000여 명의 여성들이 모였다. 비좁고 더러운 작업장에서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던 봉제공장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은 거리로 몰려나와 “빵과 장미를 달라”고 외쳤다. ‘빵’은 여성의 생존권을, ‘장미’는 노조 결성권과 참정권을 의미했다. ‘일본 미투의 상징’이 된 여기자 이토 시오리는 자신의 책 ‘블랙박스’에서 “강간은 영혼에 대한 살인이다”고 일갈했다. 10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적지 않은 여성들이 또다른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 성공한 미투란 없다. 조직 내 위력에 의한 성폭력, 이후 2차·3차에 걸친 정신적 살인이 멈추지 않는 한 실패한 미투만이 남을 뿐이다. 

조범자 사회섹션 에디터 anju101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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