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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지역균형발전의 함정 ‘다람쥐 도로’의 교훈
삼성전자와 함께 반도체 시장의 핵심 플레이어로 꼽히는 SK하이닉스는 최근 적잖은 마음고생을 했다.

미래 핵심 성장사업으로 꼽은 반도체 사업의 육성 차원에서 단행하기로 한 대규모 투자 계획에 정치 논리가 개입되면서였다. 투자 지역을 둘러싸고 경기도 이천시와 용인시, 충북 청주시, 충남 천안시, 경북 구미시 등이 잇따라 러브콜을 보낸 탓에 SK하이닉스는 지역균형발전의 정치 논리에 사실상 포위된 형국에 처했던 것이다.

신중한 자세로 정부 결정을 기다리던 SK하이닉스는 급기야 지역 간 유치전이 과열 조짐을 보이자 경기도 용인으로 부지를 정해줄 것을 정부에 공식 요청하는 강수를 뒀다.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전문인력의 수급, 기존 제조 라인과의 시너지 등을 고려해 일찌감치 수도권을 후보지로 낙점했던 터였다.

논란이 많은 현안에 대해 이처럼 공식 입장을 직접적으로 밝히기까지 SK하이닉스는 상당한 부담감을 안고 갈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정부가 요청을 받아들여 수도권 규제완화 작업에 착수했지만, 후보지에서 탈락한 지역들은 “문재인 정부가 외쳐온 국가균형발전에 역행한다”며 여전히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역균형발전의 강력한 영향력은 얼마 전 정부가 발표한 예비타당성(예타) 면제에서도 여실히 드러난 바 있다.

정부는 최근 24조1000억원 규모의 23개 지역사업을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대상으로 선정했다. 면제 대상의 면면을 보면 지방의 광역단체별로 대규모 SOC(사회간접자본)에 대한 예타가 골고루 면제됐다. 전형적인 ‘나눠먹기 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온 이유다. 이번 예타 면제의 논리적 배경에도 지역균형발전이 어김없이 동원됐다. 정권 출범부터 경기 부양을 위한 인위적인 토건 사업은 벌이지 않겠다던 정부의 다짐은 지역균형발전의 힘에 끝내 굴복하고 말았다. 더불어 예타 면제 대상에는 수도권 사업들이 대거 빠지며 수도권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비판까지도 쏟아졌다. 이번 예타 면제는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추진된 4대강 사업을 연상케 한다. 당시 정부는 ‘재해예방 및 복구 지원 등으로 시급히 추진이 필요한 사업’이라는 명목으로 4대강 사업에 대한 예타를 면제했다. 당시 현 정부는 이명박ㆍ박근혜 정부를 두고 ‘토건 국가’라고 강하게 비판해 온 바 있다. 결국, 스스로 자기 부정을 하는 수단으로 지역균형발전의 논리가 동원된 것이다.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모여 사는 현실이 정상적인 것은 물론 아니다. 인구가 10만명 이하로 줄어든 상주시의 공무원들이 상복을 입고 출근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은 지역간 양극화의 현실을 대변한다.

그럼에도 지역균형발전 논리가 ‘전가의 보도’처럼 남용돼선 곤란하다.

기업이 생존을 위해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할 때조차도 각 지역의 눈치를 보는 게 결코 상식적인 일은 아니다. 각 지역의 특성에 맞는 육성 전략의 고민 없이 인위적으로 지방을 살리겠다는 균형론으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부작용만 낳을 뿐이다. 자동차 대신 다람쥐만 다녔다는 일본의 ‘다람쥐 도로’의 교훈을 다시 곱씹어 볼 때다. 

정순식 산업섹션 재계팀장 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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