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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어정쩡’ 시대에 맞은 정월 대보름
불장난을 하면서 이 보다 속 시원할 수 있을까. ‘망월(望月)이’ 돌리는 날 아침부터 아이들은 분주하다. 불놀이 통으로 쓰기에 꽁치 통조림은 너무 작고, 지난 번 벽에 페인트칠 한 뒤 남은 깡통이 제격이다.

원기둥 통 속에서 불이 잘 타려면 공기가 통해야 한다. 그래서 깡통 밑바닥이며, 옆면에 구멍을 뚫어야 하는데, 송곳으로는 어림없다. 쓰지 않는 낫으로 쿡 쿡 찍은 다음 살짝 비틀면 얼추 지름 1㎝ 정도의 구멍이 뚫린다. 이 정도 구멍이 열 댓 개 정도면 되겠다. 내 팔의 원심력 크기에 맞춰, 깡통에 적당한 길이의 철사 줄 손잡이만 달면, 끝. 실탄 처럼 쓰일 불 쏘시개로는 송진 잔뜩 묻은 마른 소나무 조각이 제격이다. 아버지는 누렁이 여물 가마솥 아궁이에 쓸 쏘시개 몇 개를 처마 밑에 넌즈시 놓아 두셨다. 애들이 신나게 망월이 놀이 하라는 무언의 배려이다.

구정때 세뱃돈을 받으며 기뻐 날뛰던 것이 불과 보름 전인데, 또 축제다. 정월 대보름은 겨울 텅 빈 밭 위 언덕에서 깡통 쥐불을 돌리다 휙 내던져, 화약 불꽃놀이 못지 않은 밤하늘의 퍼포먼스를 해도 불 날 걱정 없는 한겨울이다.

불빛 잔상현상 때문에 쥐불 돌릴 때 그려지는 원을 동네 꼬마 녀석들 여럿이 만드니 올림픽 오륜마크 부럽지 않다. 알불이 깡통에 3분의 1쯤 남을 무렵 내던지는 쾌감, 불빛이 그리는 유려한 곡선의 매력 때문에 정월대보름은 아이들이 학수고대하는 날이다. 동그란 희망 도장을 보름달 아래서 찍는 날이다. ‘망월이 쥐불놀이’는 액운을 떨치고 하려던 일을 해내겠다는 의지가 배어있는 정신적 의례이다.

배 고플 무렵 아이들은 야식 동냥에 나서 집집마다 다니며 오곡밥을 얻어 먹는다. 밖에 인기척이 나면 이웃 어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찹쌀과 차조, 수수, 기장, 붉은 팥, 검은 콩으로 지은 오곡밥을 퍼준다. 오색 조화로 때깔 마저 고운 오곡밥은 의심의 여지 없는 건강 기능식품이다. 농업진흥청에 따르면, 노란색 조와 기장에는 식이섬유, 무기질, 비타민 등이 풍부하다. 붉은 팥과 검은 콩은 콜레스테롤을 억제하는 안토시아닌이 많이 들어 있고 눈을 건강하게 한다. 연갈색 수수에는 폴리페놀 함량이 많아 항산화 효과가 뛰어나고 혈당 조절기능을 갖고 있어 고혈압, 당뇨, 비만 등 생활습관병들을 미리 막거나 억제하는데 도움을 준다. 흰색 찹쌀은 성질이 따뜻해 소화가 잘 된다.

부럼은 치과적 검사 메서드이다. 많이들 호두를 연상하는데 실용주의 21세기엔 행여 잇빨이 다칠새라 주로 땅콩을 취한다. 부스럼을 막고 건강한 치아를 위한 의례이다. 치아와 씹을 때 분비되는 아밀라아제는 위와 장 건강의 근원이다.

설이 ‘행복 독트린을 발표하는 날’이라면, 정월 대보름은 ‘행복 독트린 실천을 위한 실증적 준비의 날’이다.

요즘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것이 참 많다. 새 정부 들어 하다 마는 일, 고집피다 뒤늦게 합리적 대안을 시도하지만 본 궤도를 못찾은 일, 효율과 실용에 이념의 덫을 놓아 방해하다 뒤늦게 후회한 일 등이 많아 현재로선 제대로 된 성과가 적어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정월 대보름날 ‘실행력’ 좀 키우겠다고 다짐했으면 좋겠다. 뭔가 찜찜한 국민들 속 좀 시원하게. 

함영훈 산업섹션 선임기자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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