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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김서령 지음, 푸른역사)=겨울밤, 마을처녀와 아지매들이 수틀을 들고 모여 수다를 떨다 입이 심심해진다. 주전부리로 배추는 만만하다. 배추밭에서 막 뽑아온 배추를 된장에 찍어 식은밥과 함께 우적우적 소리도 요란하게 먹다보면 할매들의 눈치가 보인다. 나이가 성찮은 할매들을 위해 얼른 배추를 삶고 밀가루를 입혀, 들기름에 지져낸다. 밍밍하면서 고소한 ’깊은맛‘의 배추적은 헛헛한 속을 차분히 채워준다. 지금은 보기 힘든 먹거리와 부엌 풍경을 구수하게 그려낸 책은 생생하고 풍부한 어휘와 표현에 그만 입맛을 다시게 된다. 지난해 10월 타계한 김서령의 음식관련 글을 모은 에세이는 잊혀져가는 고향의 정취를 되살려낸 일종의 풍물지이기도 하고, 음식을 통해 삶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인생론이기도 하다. 이불 시치는 굵은 실보다 가는 국수발을 만들어내는 엄마의 건진국수, 여문 쌀알을 뭉근히 익혀 오래 묵은 간장을 똑똑 끼얹어 먹는 갱미죽, 정성어린 명태 보푸름, 슴슴한 무익지까지 안동지방의 잊혀져가는 음식을 풍성하게 차려놓았다. 아버지의 밥상과 손님밥상을 치르는 사제같은 엄마의 손길과 부엌을 보며 칭얼대는 어린 ’나‘의 관점으로 쓴 글은 이 책의 백미다.

▶우연의 신(손보미 지음, 현대문학)=한국문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 손보미의 소설. ‘현대문학 핀 시리즈’로 나온 소설은 전 세계 한 병 남은 조니 워커 화이트 라벨을 찾는 과정을 통해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는 얘기를 담고 있다. 유능한 민간조사원 ‘그’는 완벽한 일처리로 분야에서 명성이 자자하다. 그는 자신의 몸이 ‘포화상태’ 직전이란 신호를 보내면 모든 걸 내려놓고 자신만을 위한 여행을 떠난다. 방콕행 여행을 하루 앞둔 저녁, 대형 로펌의 대표 변호사로부터 의뢰인을 꼭 만나줄 것을 부탁받고 그는 자신의 휴가일정을 뒤로 한 채, 프랑스로 출국한다. 의뢰받은 일은 한 병 남은 조니워커 화이트 라벨을 찾아와 달라는 것. 프랑스에서 대학을 다니고 뉴욕 예술재단에서 일하는 ‘그녀’는 어느날 고등학교 동창이 유품을 남겼다며, 그것을 받아가주길 원한다는 편지를 받고 프랑스로 돌아간다. 작가는 우연적 사건들을 켜켜이 쌓아가며 이를 통해 운명적 사건을 만들기 보다 우연의 행로를 담담히 보여주고자 한다. 우연적인 사건들이 만들어내는 긴장감이 읽는 재미를 준다.

▶크로스 사이언스(홍성욱 지음,21세기북스)=소설 ‘프랑켄슈타인’은 유전자조작을 통해 아기를 만들어내는 현재 첨단과학과 닮아있다. 200년전 소설은 더 이상 픽션이 아니다. 소셜미디어와 빅데이터에 노출된 개인과 소설 ‘1984’의 빅브라더, 유전자가 운명을 결정하는 세상을 그린 영화 ‘가타카’, 인공지능 로봇시대에 대한 철학적 메시지를 담은 SF영화 ‘공각기동대’‘블레이드 러너’ 등 대중문화와 첨단과학은 쉽게 넘나든다. 저자의 서울대 강의를 바탕으로 엮은 책은 영화, 소설, 만화 등 대중문화 콘텐츠를 통해 과학과 우리 사회의 관계를 분석, 일상을 과학적으로 새롭게 들여다보기를 시도한다. 가령 남녀 차이를 강조하는 과학은 충분히 과학적일까?, 동물학대의 근거는 어디서 비롯됐을까, 로봇의 반란은 가능할지 등의 질문에 답해가면서 존재와 삶, 과학과 인문학이 완전히 구분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융합적으로 사고하고 창의적으로 세계를 마주하는 관점의 확장을 경험할 수 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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