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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이형석 인터내셔널섹션 에디터] 다보스와 트럼프, 혹은 ‘멋진 신세계’와 ‘1984’
스위스의 눈덮인 고급 스키휴양지와 ‘셧다운’이라는 팻말이 곳곳에 내걸린 어둠 속의 워싱턴DC. 2019년 1월, 극명한대조 속에 두 개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모인 세계 최고 부자들이 결국은 와인과 스키로 마무리하는 모임과, 월급을 받지 못한 공무원들이 전당포에서 돈을 빌리고 푸드뱅크에서 급식 줄을 서는 도시. 수십년전에 ‘오늘’을 비관적으로 예견한 두 작가, 올더스 헉슬리와 조지 오웰이라면 두 도시의 풍경을 그들의 저작 그대로 ‘멋진 신세계’와 ‘1984’의 증거라고 하지 않을까.

전 세계 주요 정치ㆍ경제ㆍ문화 지도자들이 글로벌 현안을 논의하는 제49차 세계경제포럼(WEFㆍ다보스포럼)이 22일(현지시간) 개막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도널드 트럼프와 시진핑, 테리사 메이, 에마뉘엘 마크롱 등 ‘다보스에 없는 사람들’이 다보스를 지배하고 있다고 했다. 이번 다보스포럼의 주제는 ‘세계화 4.0’이다. 한마디로 트럼프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보호무역, 민족주의, 자국중심주의 등에 반대하고 다자주의와 세계화ㆍ개방성을 옹호하며 인적ㆍ기술적 네트워크를 강화해 빈부 양극화ㆍ기후변화 등에 공동대처하자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두 세계는 충돌하고 있다. 정말 그럴까. 영국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존 란체스터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에 기고한 ‘두 세계의 최악’이라는 글에서 “현대의 세계는 ‘디스토피아’에 더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며 이 디스토피아는 20세기의 두 작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조지 오웰의 ‘1984’의 세상이라고 했다. 그리고 두 세계는 다른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로 겹쳐지고 있다는 요지의 분석을 했다.

1932년작 ‘멋진 신세계’는 고도로 발전된 기술에 바탕한 완벽한 계획 사회를 그렸다. 유전자 판별에 의해 계급과 기능이 결정된 아이들이 인공적으로 ‘생산’되고, 사회는 갈등 없는 조화를 이루며, 사람들은 출산과 생산으로부터 분리된 오락과 여흥을 즐긴다. 1948년작 ‘1984’은 세계 한편에서 끊임없이 대외 전쟁을 벌이는 ‘빅브러더’와 ‘당’이 통치체제의 맨꼭대기에서 구성원들의 언어와 정신, 행동을 극도로 통제하는 전체주의 사회를 그린다. 과학자와 귀족 집안의 헉슬리는 고도로 발전된 기술과 풍요로운 경제에 의해 설계된 ‘경제ㆍ기술결정론’의 디스토피아를 그렸다. 반면 영국 하층 계급의 삶에 천착했으며 스페인 내전에 참가하고 평생 좌익사상을 가졌던 조지 오웰은 공산주의의 전체주의화에 대한 환멸을 소설로 썼다.

그들의 통찰에 따르면 기술과 경제적 풍요를 추구하고 ‘데이터’와 ‘유전학’ 등에 기반한 ‘네트워크’를 추구하는 세상은 ‘멋진 신세계’이며, 언어와 역사의 조작, 강력한 통치자에 의한 통제는 ‘1984’이다. 두 소설로 현대사회를 분석한 존 란체스터는 ‘헉스웰’(헉슬리+오웰)이라고 할 정도로 두 세계의 ‘혼합’이 오늘날의 추세가 되고 있다고 했다. 아마도 ‘부자들의 공허한 말장난’이라는 비아냥 속에 스스로 ‘기술과 풍요의 세상’을 전시하는 다보스포럼, 그리고 끊임없이 ‘외부의 적’을 만들어내며 권위주의 통치체제를 강화하는 ‘스트롱맨’들의 세상, ‘트럼프 월드’는 그 명징한 증거가 될 것이다. 

이형석 인터내셔널섹션 에디터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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