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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숨길 죄는 공포…COPD<만성폐쇄성폐질환>환자, 미세먼지가 두렵다
유해 공기로 폐렴·호흡곤란 유발
2015년 환자 321만명…매년 급증세
고려대 구로병원 대기질 상관관계 분석
미세먼지 30㎍/㎥이상땐 입원율 최고

“한국 2060년 대기오염 사망율 1위”
OECD·전문가들 섬뜩한 경고
“국가검진에 폐질환 포함시켜야”

미세먼지는 건강한 사람의 폐 건강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주지만 COPD와 같은 호흡기질환을 가진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악영향을 줄 수 있다.

#경증의 천식이 있는 주부 박모씨는 요즘 외출 때마다 챙기는 물건이 있다. 휴대폰, 지갑과 함께 마스크는 어느새 필수품이 되었다. 하지만 요즘처럼 미세먼지 농도가 나쁜 날에는 마스크만으로도 소용이 없는 것 같다. 집에 돌아오면 목이 따끔거리며 수시로 잔기침이 났다. 어느 때는 기침이 멈추지 않아 물을 마셔도 소용이 없었다. 최대한 외출을 줄이려고 하지만 하는 일을 쉴 수도 없어 박씨는 병원에라도 가봐야 하는 것 아닌지 걱정이 든다.

‘삼한사미’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지난 주말부터 나흘 연속 미세먼지가 한반도를 뒤덮으며 사람들은 미세먼지의 공포를 실감했다. 잿빛 하늘로 인해 10명 중 8~9명은 마스크를 쓰고 있어 마치 수년전 ‘메르스’ 사태의 모습이 재현되기까지 했고 아예 집 밖을 나서지 않는 사람도 많아 거리는 평소보다 한산한 모습을 연출했다. 이처럼 건강한 사람도 미세먼지에 큰 공포감을 느끼게 됐지만 천식이나 COPD(만성폐쇄성폐질환)처럼 호흡기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공포를 넘어 생명에 위협을 느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COPD 사망자 321만명…미세먼지, 폐 기능 악화 주범=COPD는 유해한 입자나 가스 흡입 등으로 인해 폐에 염증이 생기고 이로 인해 점차 숨길이 좁아지는 만성 호흡기 질환이다. 방치하면 폐기능이 저하되어 호흡곤란을 유발,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치명적 질환이다. 2010년 기준 전세계 COPD 환자 수는 약 3억8400만명에 달하며 유병률은 약 11.4%로 추산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COPD로 인한 사망자 수가 2015년 약 321만7000명에서 2030년 약 456만8000명으로 늘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COPD로 인한 전세계 사망자는 2015년 인구 10만명당 44.4명에서 2030년 55.1명이 예상된다. 오는 2020년 COPD가 전 세계 사망원인 3위로 올라간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한국의 COPD 사망자도 크게 늘고 있다. 통계청의 2017년 사망원인 통계에서 COPD 사망자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만성하기도질환이 10만명당 13.2명으로 전체 중 8위에 해당했다. 하지만 이는 결코 안심할 수준이 아니다.

유광하 건국대학교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는 “국내 사망원인 4위인 폐렴으로 인한 사망자 상당수가 현재 COPD로 인한 사망자로 추정되며 국내 사망원인 2위인 심장질환 중 심근경색으로 인한 사망자 일부도 COPD가 원인으로 추정된다”며 “이미 한국도 COPD로 인한 사망자가 사망원인 3위 뇌혈관질환만큼이나 사망자가 나오는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고 말했다.


▶미세먼지 농도 높을 때 호흡곤란ㆍ입원율 높아져=이런 COPD를 악화시키는 원인은 다양하지만 최근에는 미세먼지가 주범으로 꼽히고 있다. 세계보건기구가 규정한 1급 발암물질인 미세먼지는 폐기능을 떨어뜨리고 폐기능 감소 속도를 높이며 미세먼지에 민감한 COPD와 폐암을 비롯한 호흡기질환의 발병 및 악화, 사망 위험을 증가시킨다.

실제 연구를 통해 미세먼지가 COPD 환자의 호흡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것이 입증되기도 했다. 지난 해 한림대 동탄성심병원 호흡기ㆍ알레르기내과의 현인규ㆍ김철홍 교수와 일본 구루메대 의대 예방의학교실이 참여한 공동 연구팀은 2년(2013~2015년) 동안 동탄성심병원을 방문한 COPD 환자 75명과 호흡기 질환이 없는 90명을 비교ㆍ분석했다. 그 결과 미세먼지가 심할수록 COPD 환자의 호흡곤란 횟수는 일반인보다 최대 28배나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철홍 교수는 “연구를 통해 미세먼지, 이산화질소, 오존이 삶의 질을 악화시킬 정도로 호흡기 증상을 유발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미세먼지와 COPD 환자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는 또 있다.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호흡기ㆍ알레르기 내과 심재정, 최주환 교수팀은 2015~2017년 병원에 입원한 40세 이상 COPD 급성 악화 환자 374명을 대상으로 대기오염과 COPD 위험도의 상관관계를 비교 분석했다. 교수팀은 총 882일 동안 COPD가 악화돼 입원한 환자 374명을 통합대기환경지수 수준(좋음/보통/나쁨/매우나쁨)에 따라 나눠 추이를 분석했다. 그 결과 ‘좋음’ 수준에 비해 ‘보통’ 이상 시 급성악화로 입원하는 환자가 1.6 배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기오염물질 중 미세먼지(PM10)가 30 ㎍/㎥ 이상일 경우 입원율이 가장 높았다.

또한 미세먼지가 높은 날을 기준으로 3일 뒤에 급성악화로 인한 입원율이 가장 높았다. 미세먼지가 체내에 흡수되면 면역세포가 먼지를 제거하기 위해 비정상적인 염증반응을 일으키는 시간이 걸리면서 입원이 평균 3일 소요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심재정 교수는 “그동안 미세먼지는 천식, 급성기관지염, 심혈관질환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지만 COPD에 관해선 정확한 수치와 기준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다”며 “이번 연구로 미세먼지와 COPD 발병 위험에 대한 상관관계를 확실히 확인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 2060년 대기오염으로 인한 조기 사망율 ‘1위’=이에 전문가들은 미세먼지로 인한 COPD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국가건강검진에 폐기능 검사를 포함하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지난 25년간 OECD 국가들의 연평균 미세먼지 농도는 15um/m³로 낮아진 반면 한국은 29um/m³로 오히려 높아졌다.

OECD는 2060년 대기오염으로 인한 한국의 조기 사망율이 OECD 회원국 중 1위 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특히 COPD는 만성질환 가운데 1인당 연간 사회경제적 부담이 가장 높은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김영균 대한결핵 및 호흡기학회 이사장은 “미세먼지 문제가 장기화되며 국민들의 건강에 대한 우려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며 “폐기능검사를 국가건강검진에 포함해 미세먼지로 인한 만성 호흡기질환을 조기 진단하는 것이 국민건강 증진과 사회적 의료비용 감소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열ㆍ손인규 기자/iks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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