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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김다은 소설가·추계예술대 교수] 어른의 세계부터 허하라
며칠 전, 한 식당에서 특이한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옆 테이블에 가족으로 보이는 네 사람이 앉았는데, 활발하게 대화하고 많이 웃는 것으로 보아 여유 있고 즐거운 자리였다. 그런데 그 분위기에 완전히 소외된 존재가 있었다. 두세 살 정도로 보이는 된 아기였다. 아직 유모차를 타야할 만큼 어리고 제대로 말을 할 줄 모르는 것 같았는데, 식탁 테이블 위에 휴대폰을 안전하게 고정시킨 후 만화영상을 켜 준 것이다. 화면을 따라가느라고 아기의 맑고 큰 눈동자가 끊임없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어른들이 전혀 방해받지 않고 거침없이 자유로운 식사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유독 그날 그 광경을 유심히 바라본 것은 앞에 앉은 동행자 때문이었을 것이다. 모처럼 만난 지인이 털어놓은 고민은 아들과의 대화단절 문제였다. “방문을 닫고 들어가면 나오지도 않아요. 휴대폰과 게임만 들여다보거든요. 왜 나와 대화의 의지가 없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요.” 필자는 옆 테이블의 아기를 향해 넌지시 고갯짓을 했다. 지인은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착하고 얌전한 아이라고 말했다. 어른들이 방해받지 않으려고 대화에서 소외시켜 얌전하게 길러진 아이가 나중에 어떻게 나타날 것 같으냐고 했더니, 지인은 소스라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흔히 자녀와 대화가 되지 않으면 사춘기려니 혹은 한때 전자기기나 게임에 빠져 그러려니 하지만, 사실 어른들의 세계에 제대로 초대된 적이 없는 아이들이 그런 경우가 많다. 소외된 줄도 모른 채 성장하면서, 자기 세계에 빠져들거나 사람보다 영상에 의존한 세계를 만들어나간다. 그런데 갑자기 왜 식탁에서까지 휴대폰을 들여다보느냐고 혹은 왜 방에서 혼자 컴퓨터만 하느냐고 꾸중을 듣게 되면, 자녀들로서는 그 모순을 이해하기 힘들다. 의사소통은 더 어려워지고 부모와 저절로 멀어질 수밖에 없다.

쎙 떽쥐베리의 <어린왕자>에서 어린왕자가 여우에게 같이 놀아주기를 바라는 장면이 있다. 여우는 그럴 수 없다고 대답한다. 왜냐하면 “서로 길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길들여지는 것이 무엇인지 묻자, 여우는 “만일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너는 나에게 이 세상의 단 하나의 유일한 존재가 될 것이고, 나 역시 너에게 있어 이 세상에서 둘도 없는 존재가 될 거야. 너의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한 것은 그 꽃을 위해 네가 공들인 그 시간들 때문이야.”라고 대답한다. 자녀와 같이 놀고 싶은데 외면당한다면, 앞서 그들을 외면한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시간을 들여 서로 길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공을 들이고 길들여지기 위해서 식탁처럼 좋은 자리가 있을까. 귀찮고 좀 산만하더라도 어른들의 세계에 먼저 아이를 초대해야하는 이유이다. 아이는 말을 알아듣진 못한다 해도 분위기는 더 잘 감지한다. 같이 대화하려고 오감을 사용한다. 웃음이나 찡그림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온몸을 사용한다. 이것이 귀찮다면, 나중에 자녀가 그의 세계를 잠궈버리거나 방문을 열어주지 않는다고, 대화를 하지 않는다고 불평해서는 안 된다.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이렇게 덧붙였다. “서로 길들여지면, 네가 오후 4시에 올 때에 난 3시부터 마음이 들뜰거야!”다가오는 부모의 발자국 소리에 설레는 자녀로 키우고 싶으면, 먼저 어른의 세계를 아이에게 허해야한다.어른의 세계부터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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