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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당신이 가진 것 ‘해로운 남성성’일까 ‘근자감’일까
당신이 남성이라면 ‘자신감’은 ‘(남성적) 근육’에서 나오는 것일까, ‘(인간적) 근거’에서 나오는 것일까. 전자라면 ‘해로운 남성성’이, 후자라면 ‘멋진 인간성’이 될 가능성이 높다. 올해 전세계의 전반적인 여론과 사회 분위기에서 유도해낸 결론이다.

영국 옥스포드 사전이 최근 ‘톡식’(toxic, 해로운, 유독한)을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언론-인터넷 등에서의 사용ㆍ검색 빈도와 중요한 사회적 맥락 등을 고려한 결과다. 톡식과 어울린 문구는 올해 가장 중요한 이슈였던 환경과 남녀 문제를 반영했다. 화학물질, 남성성, 물질, 가스, 환경, 관계, 문화, 쓰레기, 조류, 공기 등이었다. 특히 ‘해로운 남성성’(toxic masculinity)은 ‘미투’와 관련해 가장 집중 조명을 받은 말로 꼽혔다. ‘남성성’은 사회적으로 습득된 ‘남성다움’을 뜻한다. ‘해로운 남성성’이란 남성의 신체적ㆍ사회적 능력에 대한 왜곡된 우월의식에 바탕해 여성에 대한 성폭력ㆍ차별 등을 휘두르는 것을 말한다.

흥미로운 것은 ‘올해의 단어’를 놓고 ‘톡식’과 최종 경쟁했던 또다른 문구다. ‘빅 딕 에너지’(big dick energy)로 소셜미디어에선 축약형인 ‘BDE’로 씌인다. ‘딕’은 남성 성기를 뜻하는 속어다. ‘BDE’를 굳이 사전적 의미 그대로 해석하자면 ‘큰 성기의 정력’일텐데, 이 신조어의 사회적 맥락은 전혀 결을 달리한다. 성적인 뉘앙스는 탈색되고 매우 긍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옥스포드 사전은 “겸손하면서도 경쾌한 자신감을 보여주는 태도”(An attitude of understated and casual confidence)라고 설명했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겸양을 갖춘, 근거있는 자신감” 정도가 될 것이다.

‘BDE’는 지난 6월부터 영어권에서 급속히 확산됐다. 미국 요리사 안소니 부르댕의 죽음과 추모물결에서 비롯됐다. 고인은 작가, 방송인으로도 유명세를 탔던 인물로, 요리 실력 뿐 아니라 자신과 요리업계의 치부까지드러내는 솔직하고 과감한 발언과 유머로 사랑받았다. 죽음 직전 레스토랑 업계에도 ‘미투’ 운동이 일어나자 “여성들에게 동지가 돼주지 못했다”며 스스로를 비판하기도 했다. 미투운동의 선구자가 됐던 여배우 아시아 아르젠토가 그의 생전 연인이었다. ‘BDE’는 고인을 추모하며 한 소셜미디어 사용자가 트위터에 올려놓으며 유행했다.

‘BDE’는 남성들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미국 언론 ‘복스’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총리로부터 여배우 틸다 스윈튼, 케이트 블란쳇, 가수 셰어, 테니스스타 세리나 윌리엄스 등에 대해 ‘BDE’ 소유자로 꼽힌다고 했다. 자신의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면서도 겸손한 사람, 페미니즘을 인정하는 남자, 당당하고 씩씩한 여성 등이 모두 ‘BDE’의 소유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 가디언은 “‘BDE’는 어떤 면에선 ‘해로운 남성성’과는 정반대”라고 했고, 복스는 “누가 BDE를 가졌는지 분류하다 보면 결국 우리 사회와 우리 사회의 가치에 대해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해로운 남성성’은 흔히 ‘육체성’으로부터 권력과 위계를 서열화하고, ‘BDE’는 능력과 인성을 가치평가의 근거로 삼는다. ‘근육’이냐 ‘근거’냐 그것이 문제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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