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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 내놓으면 31억에 팔아줄게요”
중개업자, 집값 띄우기 ‘오더’
손해볼 일 없는 주인들 ‘쉬쉬’


“최근 28억원에 실거래 됐죠. 지금 내놓으시면 31억원에 팔아줄게요.”

서울 서초구 반포동 A 아파트 전용면적 84㎡에 거주하는 이모(58) 씨는 최근 지역 중개업자로부터 이런 전화를 자주 받는다. 이 지역 아파트가 3.3㎡당 1억원에 거래됐다는 뉴스를 접한 터라 이 씨는 조금 더 오를 것이란 기대감으로 제안에 응하진 않았다. 그는 “매물로 내놓으라고 연락 오는 중개업자들이 한둘이 아니다”면서 “공식적으로 중개업소에 집을 내놓은 적이 없는데, 어찌 알고 전화했는지 놀랄 때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권 등 인기지역에서는 이 씨처럼 집을 팔라는 중개업자들의 전화 요청이나 문자를 받는 경우가 흔하다. 대부분 집값이 오르니 중개업자가 먼저 알고 연락 오는 게 기분 나쁘지 않아 넘어가고 있지만, 개인정보 유출과 단순 업무 이상의 중개행위로 불법에 해당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헤럴드경제가 서울 강남권 등 중개업자에 확인한 데 따르면 입주를 앞둔 인기 단지 마다 이른바 ‘오더(order)’라고 불리는 개인정보 묶음 거래가 활발하다. 오더에는 집주인들 이름, 주소, 전화번호 등이 다 들어있다. 이를 활용해 입주단지에서 새로 영업을 시작한 중개업자들이 본격적인 중개업무를 할 수 있다는 게 중개업자들의 설명이다.

강남구 압구정동 B 공인 대표는 “오더를 사서 중개보조원을 활용해 전화나 문자로 집주인에게 연락해 설득하는 경우가 많다”며 “중개업자가 제안한 가격으로 매물이 올라가니 집값이 빠르게 상승하는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월세 물건도 마찬가지다. 연말 9510가구가 입주하는 송파구 ‘헬리오시티’가 대표적이다. 22일 현재 인터넷 포털 네이버에 등록된 이 아파트 전월세 매물만 6881개나 된다. 이 일대 중개업자들은 ‘오더작업’에 의한 매물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일대 G공인 관계자는 “공사비 증액 문제로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이 생기면서 올해 입주할 수 있을지도 불분명한데, 누가 벌써 매물을 내놓겠냐”며 “중개업자들이 집주인을 부추겨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매물클린관리센터’에 따르면 올해 1~8월 접수된 부동산 허위매물 신고는 모두 7만3847건으로 전년 3만9269건 대비 46% 증가했다. 허위매물로 확인된 사례 역시 3만9063건으로, 지난해 1년 동안 확인된 물량 2만7712건 보다 28% 이상 많았다.

이재국 금융연수원 겸임교수는 “개인정보를 유통하는 행위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는 범죄”라면서 “정상적인 부동산 거래질서를 교란할 우려가 큰 만큼 단속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일한ㆍ김성훈 기자/jumpc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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