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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쇼핑카트에 세일품목만 가득 “당신은 평균 중산층”
슈퍼마켓은 타인을 자세히 관찰해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자 이상적인 여건을 갖춘 곳이라고 외른 회프너는 주장한다. 매장의 그토록 많은 낯선 이들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비교적 자연스럽게 꾸밈없이 행동한다. 슈퍼마켓에서 사람들의 방패는 내려가고 무방비해진다. 이로써 연구자들이 사회를 조사할 수 있는 이상적인 배양접시가 된다는 것이다.
獨 사회학자, 장바구니로 사회구성원 분석
편견없이 개인과 타인·사회가 만나는 지점
슈퍼마켓 탐색하며 열개 사회 집단 추론
중산층·디지털 원주민·기득권층 등 분류


주차장에서 청바지에 평범한 가죽 구두, 수수한 재킷을 입고 오래된 휴대전화를 사용하며 볼펜과 쪽지로 장보기 목록을 확인하는 주부를 만났다면? 장바구니를 보고 그가 어떤 신분인지를 맞추는 쪽집게 사회학자가 있다.

독일의 발랄한 젊은 사회학자 외른 회프너는 도심과 외곽지역의 크고 작은 슈퍼마켓을 들락거리며 그 안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인상과 그들의 쇼핑목록을 통해 ‘직업 본능?’을 발휘, 그들이 어떤 사회적 층위에 있는지 알아맞춘다. 장바구니만으로 독일 사회 구성원들을 분석해낸 것이다.

그에 따르면, 슈퍼마켓은 사회의 내면을 보여주는 계기판과 같다. 슈퍼마켓에서 우리는 꾸밈없이 행동하고욕망을 감추려 하지 않는다. 또 장보기는 거의 모두가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상 활동으로 개인의 전형적인 생활 패턴을 보여주기에, 자연스럽게 사회의 단면을 드러낸다는 얘기다.

지은이는 쇼핑목록을 통해 열 개 사회 집단을 추론해낸다. 즉 시민 중산층, 디지털 원주민, 사회생태적 환경주의자, 보수적 기득권층, 진보적 지식인층, 순응적 실용주의자, 전통주의자, 성과주의자, 쾌락주의자, 불안정층 등이다. 이들은 저자가 태어난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독일 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집단이다.

그렇다면 예의 도시 중심가 유명 할인매장에서 만난 주차장 주부의 쇼핑 카트에는 무엇이 들어있었을까?

얇게 저민 돼지고기 두 팩, 오렌지 한 망, 샐러드 토핑 다섯 팩짜리 한 묶음, 야콥스 크뢰눙 커피 세 봉지, 딸기 한 팩, 시리얼 두 통 등이다. 이 목록만으로 어떤 연결성을 찾지 못한 지은이는 슈퍼마켓의 주간 전단지를 발견하고 손가락을 튕긴다. 전단지 세일품목이 장바구니 목록이었던 것이다.

회프너의 분류에 따르면, 이 주부는 “시민 중산층의 생존자들, 끈질기게 사회 한가운데 남아 저렴한 물건을 구입하는 엘리트층”에 속한다. 평균적인 중산층으로 이들은 검소하고 품질의 가치를 인정할 줄 알고 때로는 싸구려 제품도 집어드는 현명한 소비자다. 똑같은 품질의 물건을 1유로 싸게 주고 살수 있다면야 말할 필요도 없다.

레트로 안경을 걸치고 턱수염이 덥수룩한 얼굴에, 화가의 그림 문신을 새긴 20대 남자가 아이폰으로 쨈 진열대 유리병들을 열심히 찍고 있다면 ‘21세기 힙스터’라 할 만하다.

이 남자의 장바구니에는 ‘몽키 47 진 한병, 싱싱한 생강, 비바 가누슈 한 팩, 병아리콩과 오일 등을 섞어 만든 페이스트 후머스 한 병, 단백질빵 아이바이스브로트 한 덩어리’가 들어있다.

지은이는 이들을 ‘디지털 원주민’으로 지칭한다. 이들에게 인터넷은 어려서부터 삶의 일부이다.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는 이들은 세계 각지에 친구들이 있으며 작은 카페를 사랑한다, 주거상황은 최소한만 갖춰져 있고 고상한 취향, 스타일을 드러낸다, 이들의 가장 큰 원동력은 개인주의, 비순응성, 그리고 어떤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다.

대형마트에서 남의 장바구니를 힐끔거리던 회프너 역시 ‘카트 목록 털림’을 당한다. ‘사회생태적 환경주의자’를 대표할 만한 40대 아주머니는 회프너의 카트에 실린 물건들을 보고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이왕에 한심한 물건들을 그토록 많이 살 바에야, 적어도 육류는 제대로 된 걸 사라”는가 하면, 소시지를 쓰레기에 비유한다든지, 샐러드 모둠 팩을 보고 신선한 채소를 썰기 위해 5분도 내지 못하냐며 온갖 잔소리를 쏟아낸다.

이런 사회-생태적 환경에 속하는 사람들의 관심사는 세상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분명한 이미지를 갖고 개선하는데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이들이다. 더 적게 사도 더 의식적으로 골라서 산다. 선한 목적을 위해 일할 수 있다면 소득감소 정도는 흔쾌히 감수하는 이들은 생태적 환경에 관한 자기 세계관을 전파하려는 열의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고등교육의 모든 장점들을 누렸음에도 어른이 되길 미루고 자기만족적 삶을 사는 자기중심적인 30대를 포함한 진보적 지식인층의 쇼핑카트는 취향과 개성중시 만큼 제각각이다. 이들의 모토는 성공과 풍요로운 삶, 진정성, 개인주의다.

성과를올리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이들은 이를 통해 풍요로운 삶과 일정한 성공을 거둔 뒤 이를 통해 두 번째 우선순위를 성취하려고 노력한다, 이 때 동원되는 주 수단은 수준 높은 교육, 비판적이지만 편견 없는 세계관, 그리고 전체에 대한 안목이다, 즐거운 체험, 교양, 미적 감각,문화를 생활 속에서 추구하는 걸 잊지 않는다.

이 밖에도 전통적 가치를 지키는 충실한 시민들, 항상 한발 앞서가려는 엘리트들,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늘 배제와 불이익을 받는 사람들 등 지은이의 슈퍼마켓 탐색은 이어진다.

지은이는 무엇보다 사회구성원들의 다양한 면면을 보여주는 데 충실한 모습을 보인다. 또한 누군가를 처음 볼 때 우리의 감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등도 그 자신의 내면의 반응을 통해 보여준다. 편견없이 개인과 타인, 사회가 어떤 지점에서 만나고 반응하는지 생생하게 읽을 수 있다.

특수 공간을 통해 독일 사회의 단면을 읽어낸 회프너의 쇼핑카트를 우리 장바구니에 적용, 읽어내 볼 만하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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