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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한결의 콘텐츠 저장소] 예측 불가능성이 몰고 오는 두려움 난민포비아 담아낸 SIDance 개막작
서울세계무용축제 개막작 인시에미 이레알리 컴퍼니의 ‘난파선-멸종생물 목록’ ⓒYana Lozena [사진제공=서울세계무용축제]
칠흑 같은 어둠 속의 안개가 자욱한 무대 위에서 커다란 그림자 하나가 움직인다. 어둡기도 했거니와 무대에 가득 깔린 포그 때문에 그 형체는 눈으로 쉽게 파악되지 않았다. 뿌연 연기 속에서 스멀스멀 움직이더니 거대하게 부풀어 오른다. 그 검은 물체는 무대 위를 이리저리 누비는데, 마치 바다 속을 유유히 헤엄치는 괴물을 연상시켰다. 천천히 움직이는 데도 매우 위협적이었다. 엄습해오는 극도의 불안감과 긴장감이 도리어 그 형체를 더욱 응시하게 만들었다. 마치 관객을 뒤덮을 듯 객석 가까이 다가왔다가도 금세 방향을 틀어 퇴장 할 것 같이 무대 옆으로 이동하는데, 관객들은 긴장을 놓지 못하고 계속 주시할 수밖에 없었다. 이 거대한 오브제는 바람에 부피가 부풀어 오르는 형태의 집채만 한 대형 튜브였다.

그렇게 움직인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 물체가 지나간 자리에 전신을 탈의한 채 포즈를 취하고 있는 무용수가 나타났다. 마치 어떠한 상황을 사진으로 포착해 놓은 듯 부동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러기를 잠시, 어느새 검은 물체가 무용수를 삼키고 지나간다. 한순간에 사라진 무용수는 그렇게 또 다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무용수는 혼자였다가 두 명이 됐다가 세 명 그리고 여섯 명이 나타나기도 했다. 사라진 인간. 환각인가, 환영(幻影)인가, 아니면 어떤 메시지인가. 알 수 없는 존재에서 오는 불안감과 공포감 그리고 초조함은 지속적으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그 안에서 나타났다 사라지는 인간의 모습은 억압, 고통 그리고 죽음까지도 연상된다. 

서울세계무용축제 개막작 인시에미 이레알리 컴퍼니의 ‘난파선-멸종생물 목록’ ⓒYana Lozena [사진제공=서울세계무용축제]
무용수들은 검은 물체를 관객을 향해 던졌고, 객석 마지막 줄까지 갔다가 다시 무대로 돌아왔을땐 이미 쪼그라든 상태였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늘어진 검은 물체는 힘을 잃었으나 그 존재의 잔상은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었다.

공연은 내내 검은 물체에 투영시켜 놓은 이미지와 탈의한 인간 본연의 육체를 통해 상징성을 띤 파편만을 전달한다. 그렇게 던져진 파편들을 엮어 만들어낸 이미지들은 보는 이의 상상이 더해지면서 강한 인상을 심어준다.

이 작품은 국제사회의 최대 이슈 중 하나인 난민과 이주 문제를 암시하고 있다. 무대 위에서의 거대한 물체와 인간의 존재는 이 시대의 거대자본주의 혹은 사회가 낳은 폭력과 인간의 모습, 이방인에 대한 시선과 두려움, 유럽의 난민과 이주 문제를 은유한 것이다.

이 공연은 제21회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2018)의 개막작 ‘난파선-멸종생물 목록’(서강대메리홀 대극장, 10월 1일~2일)이다. 시댄스(SIDance)는 매 해 세계 각지를 대표하는 저명한 무용단들이 대거 참여하는 가운데 축제의 개막작은 늘 큰 관심을 모아왔다. 이번 개막을 장식한 이 공연은 인시에미 이레알리 컴퍼니의 작품으로, 안무자 피에트로 마룰로는 최근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안무가다. 2018년 유럽의 대표적인 현대무용플랫폼 에어로웨이브즈(Aerowaves-Dance Across Europe)에서 올해의 안무가로 선정됐고, ‘난파선-멸종생물 목록’은 덴마크, 스위스, 미국, 대만 등 올 한 해만 세계 각국으로부터 15여건의 초청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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