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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장 맹신 대신 균형잡힌 삶… ‘도넛’에 담은 경제학
도넛 경제학케이트 레이워스 지음, 홍기빈 옮김학고재
“우리가 스스로 그리는 초상화가 장래의 우리 모습을 분명하게 결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학이 그리는 인류의 모습도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우리가 매우 복잡한 존재임을 스스로 더 잘 이해한다면 인간 본성을 더욱 풍부하게 피워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도넛의 안전하고 정의로운 공간에서 모두 함께 피어나게 해주는 경제를 만들 가능성도 훨씬 높아질 것이다.” (‘도넛 경제학’에서)
성장주도 경제학, 불평등·환경파괴 유발
대안경제 관점 지속가능·공유 모델 착안
사회적 기초~생태계 한계 도넛형 시각화
경제에 대한 새로운 사유의 틀 제시 평가


경제학을 설명하는 가장 유명한 그림을 꼽자면 알프레드 마셜이 제시한 수요와 공급이 교차하는 곡선이라 할 만하다. 학교과정에서 누구나 배우는 이 다이어그램은 경제학의 기초에 해당한다. 또 하나의 강력한 그림은 폴 새뮤얼슨이 1948년에 그린 경제 순환모델 다이어그램이다. 마치 파이프 배관을 따라 물이 흐르는 것처럼 소득이 경제 전체를 흐르는 것으로 묘사한 유명한 그림이다. 성장 주도 경제를 설명하는데 사용돼온 이 그림을 놓고 최근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인간사회와 자연의 복잡계를 이런 기계적 균형으로 단순화시킬 수 없다는 지적이다. 그 중심에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등장한 대안 경제학이 자리잡고 있다. 대안경제학은 그동안 주류경제학의 모델에서 무시되고 생략된 지속가능성과 공유의 개념을 공통분모로 삼는다.
‘21세기 케인즈’로 불리는 케임브리지 지속가능 리더십연구소 선임연구원인 케이트 레이워스는 주류경제학을 넘어설 경제적 사고의 틀을 시각화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주류경제학을 강화하는데 기여한 그림처럼, 개념을 단순화해 이미지화한 그림의 중요성을 인식한 것이다. 그 결과물이 도넛 다이어그램이다.

도넛 다이어그램의 가장 안 쪽의 고리는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최소수준의 사회적 기초를 나타낸다. 그 안으로 떨어지면 기아와 문맹 같은 심각한 인간성 박탈사태가 벌어지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부족해서는 안되는 삶의 기본 요소이다. 식량, 물, 위생, 에너지 접근권과 교육, 의료 서비스, 일자리, 정보망과 사회지원망 등이 이에 해당한다.

도넛의 바깥쪽 고리는 생태적인 한계선이다. 이를 넘어가면 기후변화와 화학적 오염, 생물다양성 손실 등 지구의 생명유지 시스템에 치명적인 위기가 닥치게 된다. 사회적 기초와 생태계의 한계선 사이에 인간을 위한 최적의 도넛 세계가 존재한다. 지은이는 주류경제학의 주요 사고방식과 앞으로 지향해야 할 경제학의 모습을 그림으로 대비시켜 풀어나간다.

가령 70년대 경제학자들은 GDP, 국민생산을 진보의 척도로 여겨왔다. 지은이는 GDP성장이라는 목표는 다른 새의 둥지를 차지한 뻐꾸기처럼 경제학의 참 목표를 밀어내고 둥지를 차지했다고 지적한다. 이 GDP성장 신화는 소득과 부의 극단적인 불평등과 생명파괴라는 생태계 위험을 초래한 게 사실이다. 지은이는 21세기에는 이를 대신할 더 큰 목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즉 지구의 한계내에서 모든 개개인의 인간적인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GDP의 무한 성장 신화 대신 어떻게 균형을 이루며 번영할지가 중요하다.

지은이는 주류경제학의 ‘경제순환모델’도 새로 그려낸다. 경제순환모델은 가계가 노동과 자본을 제공하면 기업은 임금과 이윤을 제공하고, 이를 바탕으로 소비와 지출이 이뤄지며 기업은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기완결적 시장으로 단순화된다. 이 모델은 국가의 역할과 가정경제의 의미가 무시되고 공유지의 비극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지은이는 “이제 경제의 그림을 새로 그릴 때”라며 “사회 안, 또 자연 안에 포함되어 태양을 동력으로 돌아가는 경제 그림”을 제시한다. 여러개의 고리로 형성된 원형의 다이어그램은 가장 안쪽에 경제의 주체로 시장과 국가, 가계와 공유지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를 형성한다. 지은이는 이런 역동성을 경제학의 중심에 놓으면 금융시장 과열과 붕괴부터 스스로 강화되는 경제적 불평등의 본질, 그리고 기후 변화의 티핑 포인트까지 전방위적으로 새로운 혜안이 열린다고 말한다. “경제를 무슨 단추나 레버 몇 개로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는 기계로 보고 그 단추를 찾아 헤매고 다니는 짓은 그만둘 때”라는 것이다.

지은이가 제시하는 또 다른 그림은 20세기 합리적 소비주체로서의 개인의 초상화 대신 사회의존적이고 자연의 지배자가 아닌 서로 의존하는 관계를 보여준다. 수요 공급곡선 역시 되먹임 회로(feedback loop) 한 쌍으로, 쿠즈네츠 곡선은 분배적인 네트워크 모형으로 바꾸어 제시했다. 쿠즈네츠 곡선은 불평등 문제가 개선되려면 그 전에 먼저 더 악화되는 국면을 거쳐야 하지만 경제성장을 거친 뒤에는 결국 다 개선될 거라는 메시지를 담은 그림이다. 그러나 최근 불평등은 경제 논리에서 필연적인 게 아니라 설계 오류로 인한 결과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21세기 경제학의 모습을 새로운 그림으로 제시함으로써 경제를 사유하는 틀을 새롭게 제공한 지은이는 무엇보다 성장에 대한 맹신을 버릴 것을 촉구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경제라는 관점 전환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지은이가 제시한 21세기 경제적 사고의 발상전환은 무엇보다 개념의 시각화에 의미가 있다. 생각의 틀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면밀히 살펴 단순 그림으로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이윤미 기자/me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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