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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 ‘나’ 아닌 ‘너’의 이름을 부르다

-장태창 첫 시집 ‘너를 살아가는 날들’
-빼곡함 보다는 ‘빈곳’의 아름다운 인생 노래
-현란함 삭제한 곳곳 아포리즘성 시귀 눈길

[헤럴드경제=김영상 기자] “눈에 보이지 않던 세상이 훤히 다 보인다/가끔은 보이지 않는 세상이 더 그리워질 때도 있다” <안경> 전문.

“내가 당신을 존경하는 것은/죽는 순간까지 더 높은 곳을 지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바라기> 전문.

시(詩)에서 아포리즘(aphorism)의 평판은 좋지 않다(문학평론가 신형철)고 했다. 아포리즘은 일종의 잠언으로, 깊은 체험적 진리를 간결하고 압축된 형식으로 나타낸 짧은 글을 뜻한다. 시에서 아포리즘은 그다지 수준높게 봐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시에서 중언부언과 지리멸렬 보다는 차라리 아포리즘이 낫다고 했다. 괜히 현학적인 척, 깨달음이 있는 척, 심오한 척 하는 것보다는 삶의 경험과 철학이 녹여진 소박한 잠언성 글귀가 낫다는 뜻이다.

시집 뒤쪽 해설(김성수 작가)에서 평했듯이, 장태창은 중언부언하거나 지리멸렬하기 보다는 아포리즘을 택한다. 살아온 날들, 그 수많은 사색과 성찰이 압축돼 짧은 글로 세상에 나온 것이다.

장태창 작가의 시집 ‘너를 살아가는 날들’(문학의 전당)을 읽어본 후 김성수 작가의 해설이 매우 정확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태창은 다큐멘터리와 드라마 작가, 기자 등 다양한 경력을 거쳤다. 드라마 작가를 했다고 하니 글의 재치는 물론 상상력이 풍부할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만 시집은 처음이라고 했다. 시집 첫 페이지를 넘길때 드라마 작가였다는 것을 보고 상상의 나래를 편 긴 글을 예상했는데, 생각외로 시들의 압축미가 있다. 사람 정 뭉클하게 만들던 KBS 드라마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2000~2001)의 작가였다고 하는데, 사람과 인생 그리고 자연에 대한 단아한 철학이 시집 중간 중간 엿보인다.

장태창은 ‘너’를 중시한다.

“오늘은 나를 위해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아니, 너를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너를 살아가는 날들> 중에서.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 자체를 살아야겠다고? 이기심을 버린 이타심의 인생. 장태창은 이런 깨달음을 시에 담았나보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 주변 사람을 배려하는 이타심은 장태창의 시집의 이처럼 메인 테마다. 욕심을 덜 가지면 더 보이는 세상, 너무 뻔히 들여다보이는 세상이 아닌 보이지 않는 세상에 대한 동정과 그리움은 이 시의 메인 줄거리다. 한마디로, 티격태격 또는 발버둥 치면서 사는 인생을 마감하고, 둥글게 둥글게 살겠다는 일종의 선언이다.

장태창은 “삶이란 길 위에 흔적 하나 남기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흔적 하나를 남기기 위해 내 삶에 고군분투는 하지만, 남의 밥그릇이나 남의 슬픔을 딛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선 단호히 거부하는 삶의 철학이 담겨있다.

여유 한 점 없이 바쁜 현대 사회 속으로 천천히 피어날 꽃씨를 심듯, 장태창이 흩뿌려놓은 언어의 씨앗들을 보는 재미는 이처럼 쏠쏠하다. 바쁜 일상에서, 허덕이는 삶에서 잠시 숨고르기가 필요한 이들에겐 장태창의 시는 충분히 위안이 될 것이다.

신광순(한국철도공사 초대 사장) 씨는 치열한 삶 속에서도 순박한 심성을 간직한 장태창의 내면을 알기에 “당신은 오랫동안 사람과 세상을 말이 아닌 글로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작가로 기자로 드라마처럼 살아온 당신의 인생을 사랑한다”고 추천사를 썼다. 김진만(전 외교관) 씨는 “사랑 없이 詩를 쓰는 시인이 없듯, 장태창 시인은 우리네 마음을 늘 익은 감성으로 헤아린다”며 이 책을 추천했다.

“아내가 다림질을 하고 있습니다/당신의 속내가/뜨겁게 달아올라/이내, 구깃구깃 구겨진 내 인생을 펴줍니다”. <아내의 다림질> 중에서.

사실 내가 장태창 시집의 평론을 쓰는 것은 위 시에 등장한 ‘아내’ 때문이다. 장태창의 아내는 내 지인인데, 어느날 남편이 처음으로 시집을 냈다고 했고, 그렇게 시집을 읽게 됐다. 내가 장태창 시집에 관심이 컸던 것은 동질감 때문이다. 몇권 책을 내면서 기자 생활을 하는 나 역시 얼마전 처음으로 시집을 냈기 때문이다. 시의 세상에 관한 비기너(초보자)로서 또다른 비기너의 입장을 이해한다고나 할까.

그러니 장태창을 만난 적 없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른다. 다만 젊은 패기와 욕심이 살아있는 나이를 지나, 50 넘어서 시집을 낸다는 것은 인생의 참맛을 어느정도 알고 있고, 세상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해본 사람만이 가능한 일이다. 옛날엔 거칠고 투박하고 곳곳에 송곳 투성이였던 사람일지라도 인생 전반부를 정리하고 후반부를달릴때 쯤이면 대개 오늘의 세상이 참으로 아름답고, 이문이 전부가 아니고 때론 손해 보는 세상이 의미가 있으며, 아내를 비롯한 주변인이 소중하고 가치있게 다가오는 법이다. 그게 살아있음에 대한 고마움과 세상을 향한 사랑으로 터져나오기 마련이다. 심성의 고요함이 내면을 꽉 채울때, 이때의 시는 아름다운 노래로 흘러나오는 법이다.

장태창의 시에는 전문 시인의 기법은 없다. 오히려 투박한 아마추어리즘이 곳곳에 노출된다. 그러면 어떠랴. 세상 고귀한 시보다 사람을 사랑하고, 주변을 배려하고, 욕심을 제거한 넓은 겸손이 글귀에 가득차 있는 것, 그것으로 시의 품격은 100% 이상 완성됐다.

시집 제목 너를 살아가는 날들, 출판사 문학의 전당, 초판 2018년 8월 29일, 9000원.

ys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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