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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년생 김지영’ 읽으면 페미?…특정 주제 대화 꺼리는 남녀 직장인들

-“안희정 무죄 판결 동의땐 욕 먹어”…남성들도 대화 피해
-‘82년생 김지영’ 영화화에 갑론을박…“혐오 표현 자제를”

[헤럴드경제=이현정 기자]#.1. 직장인 신모(29ㆍ여) 씨는 얼마전 직장 동료들과 밥을 먹다 불쾌한 일을 겪었다. 신 씨가 책 ‘82년생 김지영’을 최근 읽었다고 말하자 한 남자 선배가 ‘혹시 페미니스트냐’며 물었다. 신 씨는 ‘82년생 김지영’은 페미니즘과 무관하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오히려 공방만 일으켰다. 행여나 선배와 마찰이 생길까봐 신 씨는 슬쩍 대화 주제를 바꿨다. 신 씨는 “워낙 유명한 책이어서 읽은 것뿐인데 그 책 한 권 읽었다고 페미니스트로 규정하나”라며 “책을 읽지도 않고 그러니 황당했다”며 불쾌함을 드러냈다.

#2. 직장인 김모(33) 씨는 얼마 전 회식자리에서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1심 판결 주제를 꺼냈다가 혼쭐이 날뻔했다. 안 전 지사의 무죄 판결을 존중한다는 취지의 의견을 꺼냈다가 여성 동료들로부터 ‘융단 폭격’을 맞은 것. 여성 동료 대부분은 법원의 판결에 대해 분노를 드러냈다. 김 씨는 “법원이 안 전 지사의 성폭행 혐의에 대해 무죄로 판단한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동료들은 대부분은 ‘법원이 남성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취지로 이야기했다”며 “앞으로는 민감한 이슈는 꺼내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올해 그 어느 때보다 페미니즘 열풍이 커지면서 남녀간 의견 충돌이 생기는 것을 염려해 관련 주제 대화를 피하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

앞서 올해 초 전국적으로 확산된 미투 운동 당시에는 남녀간의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회식자리 등에 여성을 제외시키는 이른바 ‘펜스룰’이 퍼졌다. 그러나 최근엔 남녀에 따라 민감할 수 있는 주제 언급을 최대한 피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성폭행 혐의를 받았던 안 전 지사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것과 관련해 여성계의 반발이 심해지면서 남성 대부분 이에 대한 언급을 꺼리는 분위기다.

공무원 김모(46) 씨는 “여성들이 있을 땐 안 전 지사 판결 내용은 거의 꺼내지 않는다”며 “여성 동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도 모르고 혹시나 그들을 불쾌하게 만들 수 있을까봐 피한다”고 말했다.

최근 출판업계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소설 ‘82년생 김지영’도 남녀 간 대립의 중심에 서면서 피하는 주제가 됐다.

‘82년생 김지영’은 한 여성이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겪은 차별을 그린 조남주 작가의 소설로 ‘김지영’은 사회 각계에서 성차별 등을 다룰 때 거론되는 여성문제의 상징이 됐다.

최근 이 소설이 배우 정유미 주연으로 영화화가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부 남성들은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다. 아직 상영되지도 않은 영화지만 포털 사이트에서는 영화 평점 테러가 이뤄지고 있고, 청와대 청원 게시판엔 ‘정유미 영화 82년생 김지영 출연 반대합니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영화화를 막아주세요’ 등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이 책을 읽었다는 직장인 최모(32ㆍ여) 씨는 “이 소설을 페미니스트 책이라기 보다는 우리나라 사회의 현주소를 알려주는 책같은데 이를 읽거나 언급만 해도 일부 남성들이 나를 페미니스트 취급해 책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책에 대한 해석 등 개인적인 의견은 존중하되 혐오 표현을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법원 판결이나 책에 대해 젊은층이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현실은 남녀 간의 대립이 심화된 우리나라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며 “다양한 해석과 의견을 표현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일부인 만큼 이를 선악으로 규정하거나 혐오의 대상으로 보아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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