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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 윤석헌 100일…수레바퀴 속 붕어
한(漢) 경제(景帝) 때 재상을 지낸 원앙(袁)은 은퇴 후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며 여생을 즐길 때다. 남을 잘 돕기로 이름 높던 극맹(劇猛)이라는 협객이 원앙을 찾았다. 원앙은 처음 만난 극맹을 극진히 대접했다. 이를 본 이웃의 한 부자와 원앙과의 대화다.

“듣자 하니 극맹은 도박꾼인데, 어찌 그와 교우하십니까?”

“그가 비록 도박꾼이지만, 모친상 때 조문 수레가 천 대가 넘었소. 그는 급한 일로 도움을 청하는 이를 이런저런 핑계로 따돌리지 않는 사람이요. 어느 날 내게 위급한 일이 생긴다면 누구를 믿을 수 있겠소”

비슷한 이야기는 장자(莊子)에도 나온다. 장자의 집에 쌀이 떨어져 굶을 지경이 됐다. 고을 수령에게 쌀을 빌리러 갔다. 답이 기가 막히다.

“내가 장차 마을에서 세금을 걷어 들일 것인데, 그대에게 빌려 주겠소”

발끈한 장자가 가만있을 리 없다.

“내가 오는 길에 나를 부르는 자가 있어 보니 수레바퀴자국 속에 붕어가 ‘당신이 약간의 물로 나를 살려줄 수 있습니까?’라고 했소. 내가 대답하길 ‘내가 남쪽의 강가에 가는 길인데, 가서 강의 물을 보내주마’라고 했죠. 그러니 붕어가 그럽디다. ‘지금 당장 약간의 물만 얻으면 살 수 있는 데…이젠 건어물전에 가서 나를 찾으시오’라 하더이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취임 100일을 맞았다. 지난해 금융행정혁신위원회를 이끌었던 주인공 답게 ‘혁신’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혁신을 이끄는 사람이 혁신 대상으로부터 박수 받기는 어려운 법이다. 종합검사를 부활시키자 일부에서 ‘제랑득호(除狼得虎, 늑대를 쫓아내려다 호랑이를 불러들였다)’라는 평가도 나왔다. 특히 윤 원장이 무엇보다 집중하고 있는 소비자 보호 부문은 더욱 그렇다.

현행 금융관련법에는 소비자 보호 조항이 거의 없다. 이 때문에 소비자 보호를 위한 금감원의 조치에 논란이 많다. 법규를 만들면 되지만, 그게 쉽지 않다. 금융소비자보호법은 아직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그렇다고 법규가 만들어질 때까지 소비자 보호에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최근 금감원의 행보를 보면 ‘권고’나 ‘협의’ 같은 꼬리표가 달려 있는 경우가 많다.

금융회사 입장에서 금감원은 늘 무서운 존재다. 감독 및 검사권은 물론 사실상의 조치권까지 가진 금융검찰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금감원의 소비자보호 조치를 받아들이는 강도가 다를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최근 윤 원장은 “충돌하려는 게 아니다”, “경영자율권을 존중하겠다”는 등의 발언을 내놓았다.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는 게 금융회사들을 압박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듯 보인다.

원앙은 ‘라이벌’인 조조(晁錯, 삼국지 조조와 다른 인물)와 함께 이 사기열전에 이름을 올렸다. 조조는 개혁을 추진했지만 매정하고 각박해 결국 목숨을 잃었다. 반대로 원앙은 혁신론자 였지만 인기가 높았다. 원앙은 권력자들도 서슴없이 비판했지만, 비판대상이 된 권력자라 하더라도 부당한 처분을 받으면 적극 변호했다.

금융 소비자혁신은 금융당국과 금융업계의 다툼이 아니다. 소비자가 외면하는 시장은 발전은 커녕 지속하기도 어렵다. 힘 만으로도 안되지만, 법 만 따져서도 부족할 수 있다. 윤석헌 호의 순항과 성공을 기원해본다.
 
ky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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