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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故최종현 SK 회장 20주기…“IT코리아·에너지 강국 기반 닦은 경영자”
1981년 초 고 최종현 회장이 당시 야마니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최 회장은 제 2차 석유파동 당시 ‘석유외교’를 통해 원유공급 문제를 해결했다.
24일 서울 워커힐호텔 추모 행사
‘무자원 산유국’ 초석 놓은 기업인
세계 최초 CDMA 상용화의 주역

최태원 회장 대를 잇는 ‘경영 DNA’
반도체·바이오 영토 확장 새 도전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선친인 고(故) 최종현 회장이 별세한지 26일로 20년을 맞는다.

SK그룹은 오는 24일 서울 광진구 광장동 워커힐호텔에서 최 회장의 20주기 행사를 갖고 고인의 뜻을 기릴 예정이다. 행사에는 각계 인사 500여명이 참석한다.

SK그룹에 따르면 최 회장은 석유 한방울 나지 않는 한국을 ‘무자원 산유국’으로 만들고,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를 완성했으며, 세계 최초로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상용화로 정보통신기술(ICT) 강국 기반을 닦았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벌거숭이였던 충주 인등산이 울창한 ‘인재의 숲’으로 변했다. 원 안은 고(故) 최종현 회장과 고(故) 박계희 여사가 1977년 인등산에서 함께 나무를 심는 모습
최 회장은 1973년 당시 ‘선경’(현 SK)을 세계 일류의 에너지ㆍ화학 회사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섬유회사에 불과했던 SK를 원유 정제는 물론 석유화학, 필름, 원사, 섬유 등에 이르는 수직계열화 기업으로 키우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최 회장은 1980년 대한석유공사(유공) 인수, 1984년 북예맨 유전 개발 성공, 1991년 울산 파라자일렌(PX) 제조시설 준공으로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질계열화를 완성했다. 또 정보통신 분야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고 미국 ICT 기업들에 투자하며 준비한 끝에 1994년 한국이동통신 민영화에 참여하며 이동통신사업에 진출했다.

인재양성에 대한 집념도 남달랐다. 최 회장은 우리나라를 이끌 인재를 키우겠다는 신념으로 사재를 들여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하고 가난한 청년들을 유학 보냈다.

재단은 지금까지 3700여명의 장학생을 지원해 740명에 달하는 해외 명문대 박사를 배출했다. 
IMF 구제금융 직전인 1997년 9월 폐암 수술을 받은 고 최종현 회장(가운데)이 산소 호흡기를 꽂은 채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 경제위기 극복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최 회장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시절인 1997년 폐암 말기 진단을 받고 1998년 8월26일 69세의 일기로 삶을 마쳤다. 병마와 싸울 때에도 경제 살리기를 호소했다. 최 회장은 화장(火葬)이 드물던 시절 화장을 해줄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고인의 유언은 우리나라에서 화장 장묘문화가 확산하는 계기가 됐고, SK그룹은 유지에 따라 2010년 1월 500억원을 들여 충남 연기군 세종시 은하수공원에 장례시설을 준공해 세종시에 기부했다.

최 회장의 경영 DNA(유전자)는 장남인 최태원 현 SK그룹 회장이 계승하고 있다. 최태원 회장은 2011년 하이닉스 인수 등을 통해 반도체와 바이오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최종현 회장은 1978년 선경반도체를 설립했지만 2차 오일쇼크로 반도체의 꿈을 접어야 했다. 최태원 회장은 하이닉스 인수 뒤 “하이닉스가 SK 식구가 된 것은 SK의 반도체 사업에 대한 오랜 꿈을 실현하는 의미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태원 회장 취임 당시인 1998년 SK그룹은 매출 37조4000억원, 순이익 1000억원, 재계 순위 5위에서 지금은 매출 158조원, 순이익 17조3500억원, 재계 서열 3위로 성장했다.

이세진 기자/jin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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