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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 날마다 죽음의 무게를 저울에 다는 일
영국 극작가 패트릭 마버의 희곡이자 동명 영화로도 잘 알려진 ‘클로저’의 남자주인공 ‘댄’의 직업은 부고 전문 기자다. 연극을 처음 본 것은 기자 초년병 시절이었다. 부고 전문 기자, 생소했다. 외국에는 그런 것도 있구나 싶었다. 그리고 몇 년 후에는 뉴욕타임스에서 구조조정차 부고 전문 기자들을 해고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있긴 있었구나, 잠깐 다시 ‘댄’을 떠올렸지만 그뿐이었다. 우리로 치자면 신문의 주요인사 ‘동정란’을 담당하는 기자일터이다.

그리고 신문을 만든다는 것, ‘뉴스’를 생산하고 전달하는 일이라는 것이 얼마쯤은 댄의 업무, 부고 전문 기자의 일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달은 것은 요즘에 들어서다. 날마다 죽음들의 값을 매기고, 죽음마다의 무게를 다는 일. 뉴스는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이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렇다. 죽음이야말로 삶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리라.

굶어 죽고 총 맞아 죽는다. 더워서 죽고 추워서 죽는다. 병으로 죽고 사고로 죽는다. 억울해서 죽고 싸우다가도 죽는다. 늙어서도 죽고 어려서도 죽는다. 유명한 자의 죽음도 있고, 아무도 모르는 자의 죽음도 있다. 모두가 미워하는 자의 죽음도 있고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도 있다.

세계 각지의 부고가 매일 날아 들어온다. 5일 인도네시아 휴양지 롬복에서 강진이 발생해 최소 82명이 숨졌다. 시리아에선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가 민간인 인질 중 19세 남학생을 참수했다는 사실이 이날 알려졌다. 전날 알프스 산맥의 휴양지에선 관광용 항공기가 추락해 탑승객 20명 전원이 사망했다. 폭염이 전세계를 뒤덮은 올해, 지금까지 일본에선 125명 이상이 더위로 목숨을 잃었다. 한국에서도 지난 2일 기준 35명이 희생됐다. 그리스산불로는 88명이 사망했다. 라오스 댐 사고로는 131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지난해 전 세계에서 1만900건의 테러 공격이 일어나 테러범 8075명과 피해자 1만8488명이 죽었다. 콜롬비아에서는 50여년(1958~2012년)의 내전으로 26만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에선 이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총 때문에 죽는다. 지난 2004년부터 2013년까지 10년간 총기 사건 및 사고로 사망한 사람이 31만6545명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추산하면 총기 소지가 자유로운 미국에선 매일 90명 가까운 이들이 총기로 죽어가는 것이다.

날마다의 부고 중에서 익명의 독자에게 ‘전할만한 가치’가 있는 죽음들을 가려내는 일이란 매우 곤혹스러운 일이다. 유명한 자의 소식이 먼저 선택된다. 이름없는 자들의 죽음은 동시다발일수록 보도 가치가 높다. 많은 이들이 한꺼번에 사망한 경우 강대국의 시민들이 먼저 보도될 자격을 얻는다. 죽음의 무게를 다는 일이란 사실은 죽은자의 이름에 얽힌 부와 권력과 명예에 값을 매기는 일, 죽음을 셀 수 있는 형태로 계량화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게 어떤 죽음은 다른 죽음 때문에 잊혀진다. 때로 어떤 죽음들은 이름 없는 숫자로만 불려진다. 우리가 알려진 죽음들 뒤에서 잊혀진 죽음을, 계량화된 죽음들에서 그 각각의 죽음들이 가지는 개별적인 비극성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그것은 또 우리의 삶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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