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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명소리 폭염 풍경 ①] [르포] 땡볕아래 바짝 마른 전통시장…주인도, 손님도 고통
기온이 37도에 이른 지난달 30일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경동시장에서 한 노인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시장 안에는 손님보다 상인이 더 많았다. [사진=이민경 기자/ coldshoulder@heraldcorp.com]
-불볕더위 속 손님 발길 뚝 끊겨
-주고객 노인층도 더위로 못나와
-상인들 “장사 뭐 이러냐” 한숨들
-“복날에도 닭 못팔아” 폭염 원망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와, 장사가 뭐 이러냐. 미치겠다 미치겠어.”

지난달 30일 대낮의 서울 경동시장 입구. 길게 늘어선 생선 노점상가를 지나가는데 이같은 볼멘소리가 들린다. 생선 도매노점상을 하는 이모(45) 씨가 생선 좌판을 손바닥으로 철퍽 치자 각얼음 몇 알이 튀어오른다. 손님은 없지만, 좌판을 그대로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서울 한낮 온도가 37도에 달하자 손님 발길은 뚝 끊겼지만 주인의 마음은 그래도 고객을 기다린다. 이 씨는 “이 옆 빈자리도 다 생선 좌판인데 할머니들이 날씨를 못견뎌 임시휴업한 상태”라고 했다.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 위치한 경동시장은 이렇듯 폭염에 직격탄을 맞았다. 폭염 전에도 북적대진 않았지만, 불볕더위 이후엔 아예 한산해졌다. 생선과 채소 등을 파는 상인들은 “장사가 어떠냐”는 질문에 한결같이 “보시면 아시지 않나”며 어두운 표정을 내비쳤다.

조기전문점을 운영하는 김모(66) 씨는 뙤약볕 아래서 생선을 얼음박스에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그는 “날씨가 워낙 더우니까 생선이 상할까 걱정이 크다”며 “그런데 아침부터 나와있어도 손님도 없고 평택이나 양평에서 소매로 사가던 사람들도 요즘 안온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에어컨 없는 점포에서 연신 부채질을 해가며 “매출 자체가 줄어서 하루 13시간 일해도 손에 쥐는 건 5만~6만원이 전부”라고 했다.

물건을 파는 상인들이 힘든 만큼 뙤약볕 밑에서 장을 보는 손님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제기동역부터 경동시장까지 지나가며 마주치는 노인들은 장바구니를 하나씩 끌고 얼굴에 흐르는 땀을 수건으로 훔쳐내며 가쁜 숨을 쉬었다. 한 할머니는 “김장에 꼭 필요한 고춧가루를 사야해서 간만에 밖에 나왔다”고 했다. 

재래시장 현대화 작업의 일환으로 아케이드와 스프링클러가 설치된 망원시장의 모습. 아케이드 안쪽 기온이 2~3도 가량 낮았다. [사진=이민경 기자/ coldshoulder@heraldcorp.com]

대다수 재래시장의 주 고객층은 노인이다. 노인층이 아무래도 폭염에 취약하다보니 그나마 단골 노인손님도 줄었다고 한다. 장어전문점을 운영하는 정모 씨는 “소매상 외에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시는 분들은 대부분 노인인데, 이 분들이 너무 더우니까 못 나온다”고 했다.

아케이드 하나가 같은 시장을 둘로 가른 모습도 보였다.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은 아케이드 안쪽 상가와 바깥 상가로 나뉜다. 햇빛이 그대로 내리꽂히는 바깥 상가에는 발길을 멈춰 물건을 고르는 손님을 찾아볼 수 없었다. 안쪽 상가로 들어서면 상대적으로 시원한 느낌이 든다. 수증기를 뿜는 스프링클러가 천장에 일렬로 설치돼 온도를 바깥 기온보다 2~3도 가량 낮추고 있었다. 채소상에서 오이를 사가던 한 50대 주부는 “집에서 대형마트까지 걸어가는 게 더 덥고 여기는 그나마 덜 덥다”고 했다.

손질된 닭을 판매하는 상점은 예전과 달리 복날 특수를 전혀 누리지 못했다. 사장 고모 씨는 “하루에 오는 손님이 10명 이하”라고 손을 내저었다. 그는 “내가 손님이라도 식당 가서 삼계탕 먹지, 더워 죽겠는데 집에서 불 켜고 (삼계탕) 해먹겠나”라고 폭염을 원망했다. 고 사장처럼 가정에서 추가 손질이나 조리가 필요한 식재료를 파는 상점들은 하나같이 울상을 지었다.

재래시장 중 특출나게 손님이 많다고 소문난 망원시장에서도 장사가 잘 되는 곳은 요식업 상점뿐이었다. 최태규 상인회장은 “정육점이나 채소상들은 예전처럼 가족단위로 사는 손님이 와야 하는데 1인가구와 20~30대 젊은 관광객들만 북적이다보니 매출이 늘 제자리걸음”이라고 했다. 유동인구는 적지 않지만 매출이 안나는 ‘풍요 속의 빈곤’을 겪고 있다는 뜻이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폭염이 2주째 이어지자 일부 주인은 이 참에 가게를 닫고 휴가를 갈까 고민하고 있었다. 시장 여기저기에 ‘휴가중’이라는 종이가 나붙기 시작했다.

coldshould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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