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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포럼-이규성 농촌진흥청 차장]농업과학의 힘, 똑똑한 진단키트
지난 해 이맘때로 기억한다. ‘수박 모자이크병에 걸린 수박’ 이라는 사진 한 장이 인터넷상에 순식간에 퍼지면서 때 아닌 ‘수박괴담’을 낳았다. 수박을 가른 표면의 중심에 일명 소용돌이, 갈고리, 3자 모양의 패턴이 보이면 모자이크병에 감염된 수박이니 먹지 말라는 경고까지 버젓이 등장했다. 물론 이는 정확한 정보가 아니다.

수박의 소용돌이 모양은 원래 정상 수박에서도 발견되는 ‘태좌’라고 부른다. 수박씨가 있던 자리에서 만들어진 과육 부분으로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다. 수박괴담은 결국 오인된 정보가 빚은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소비자나 경제적 피해를 입은 농가 모두에 씁쓰레한 상처를 남겼다. 농작물 바이러스의 정확한 진단과 예방이 얼마나 중요한지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최근 기후변화와 농작물의 시설재배 면적 확대로 농업환경이 급변하면서 병해충 발생도 증가하는 추세다. 농작물에는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피해가 가장 치명적이며 그 피해액만도 연간 1조원에 이른다.

농촌진흥청은 농업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농작물 바이러스를 진단할 수 있는 기술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개발에 매진한 결과, 2006년부터 올해까지 각각 15종의 바이러스를 진단하는 키트, 총 14만여 점을 시ㆍ군 농업기술센터에 보급했다.

이 바이러스 진단키트는 임신 진단키트와 유사한 원리다. 바이러스 감염여부를 금 나노입자를 이용해 측정하는데 붉은 색 두 줄이 나타나면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판단한다. 단 2분 이내에 감염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농작물 바이러스 진단키트의 수입 대체효과는 약 17여 억 원이 넘는다. 농업 현장에서 바이러스 진단키트를 적절히 활용하면 연평균 400억 원에 이르는 바이러스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진단키트의 활약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농식품 생산, 가공 현장이나 구내식당, 학교 급식실의 위생 상태를 미리 점검할 수 있는 대장균(군) 검출기도 올해 안에 제품화된다. 농식품 위생지표인 대장균(군)을 조사하면 농식품을 비롯해 제조, 보존, 유통환경 전반의 위생 상태를 예측할 수 있어 식중독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 새싹채소의 재배용수나 해외로 수출되는 김의 대장균수 검출에 활용해보니 사용자들의 만족도도 높았다.

‘사전예방원칙’이란 개념이 있다. 확실한 증거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심각한 위험이 내재되었다고 생각될 때는 적기에 대비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최근 농산물 및 식품의 안정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농업분야에서도 사전예방원칙의 적용이 힘을 받고 있다. 똑똑한 진단키트 하나면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병해충이 번지는 위험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다.

열악한 환경을 딛고 메마른 사막에서 농업부국의 기적을 일군 이스라엘의 전 대통령 시몬 페레스는 ‘농업은 5%의 땀과 95%의 과학으로 완성된다’고 했다. 다양한 농업분야에서 바이러스 진단키트의 탄생은 그가 말한 95% 과학의 힘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미리 대비하고 준비하는 자를 이길 재간은 없다. 농업과학 분야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는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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