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한눈에 읽는 신간
여기에 없도록 하자(염승숙 지음, 문학동네)=이보다 더 나쁠 수 있을까. 일을 하지 않으면 햄으로 변해 세상 어디서든 뭉개지고 썰릴지 모른다는 공포스런 얘기는 최악의 디스토피아다. 주인공 ‘추’는 햄이 되지 않기 위해 기를 쓰고 일을 찾아나서는데, 결국 다른 이들의 화풀이 샌드백인 ‘홀맨’으로 전락한다. 그런 묵시록적 분위기에 걸맞게 도시는 두터운 안개가 한 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세상을 휘감고 있다. 뉴스에서는 매일 ‘오늘의 안개’‘오늘의 사고’가 이어지고 신원 미상의 햄들에 관한 정보가 쏟아진다. 안개로 가득하고 장벽으로 가로막힌 공간 속, 주인공 ‘추’는 제빙 공장, 이삿짐센터, 프랜차이즈 음식점을 전전하다 어느 날 ‘홀맨’을 구한다며 나타난 선배 ‘약’과 조우한다, 숙식 제공에 채용 증명서를 써준다는 약의 말에 추는 ‘홀맨’이 무슨 일을 하는지 따져 묻지도 않고 따라나선다. “누구나 무엇이 되어야 ”하기에, “되지 않으면 햄이”되어버리는 , “청춘인데 청춘이 아니고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이 시대의 청춘들을 작가는 처절하게 그려낸다.

엄마도 꿈꿀 권리가 있다(임지수 지음,터치아트)=귀농이나 시골살이를 꿈꾸는 이들은 많지만 실행에 옮기는 경우는 드물다. 그것도 20년 넘게 엄마로 아내로 직장인으로 살아온 이가 나홀로 산 속에서 정원을 가꾸며 살겠다고 나서면 좀 파격이다. 마흔넷, 서울 중심가에 살고 직장에 다니면서 점점 지쳐가던 저자는 산골에서 꽃과 나무를 가꾸며 살고 싶다는 소망을 품는다. 그리고 ‘내 꿈을 위한 제안서’를 쓰고,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익히며 탈출을 위한 워밍업을 시작한다. 어렵사리 땅을 마련한 그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야산에 컨테이너 하우스를 들여놓고 주말마다 자동차로 서너시간 거리를 오가며 5년을 지냈다. 황무지에 꽃이 피고 나무가 푸르르기까지 고된 노동과 인내가 필요했지만 마침내 그는 자유와 행복을 얻었다고 말한다. 메마른 야산을 고르고 나무를 심어 부드러운 땅으로 만들어낸 과정과 컨테이너 오두막 꾸미기 등 저자가 상상하고 원한 만큼 만들어나간 공간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산골살이로 졸혼이 돼버렸지만 오히려 가족들의 이해는 깊어졌다는 저자의 이야기는 귀농의 또 다른 버전이다.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파커 J. 파머 지음, 김찬호·정하린 옮김, 글항아리)=“나이듦이 좋은 것은 무엇보다 끝자락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놀랍기 때문이다. 내 생애가 완전한 파노라마로 들어오는 것이다.” 팔순의 미국의 구루 파커 파머는 노년을 이렇게 예찬한다. 그런 그도 불과 2년 전엔 달랐다. 그는 “세상이 칼로 가득 찬 느낌”이라고 말할 정도로 지독한 우울증을 겪었다. 평생 추구해온 지성과 자아, 영성, 윤리에 도달하는데 실패하면서 지독한 우울증이 왔다. 삶의 끝자락으로 다가갈수록 두렵고, ‘내 삶에 의미가 있는가’란 질문이 떠나질 않았다. 그 심연 속에서 그는 그런 질문이 그릇된 걸 깨닫는다. “나는 태양계의 중심에 있지 않다”는 것과 만물 가운데 하나인 나는 삶의 의미를 지시하거나 통제할 수 없고, 자신과 타인들이 성숙해가도록 도울 수 있을 뿐이란 깨달음이다. 여러 에세이와 시편을 담고 있는 책은 나이듦에 대한 안내서를 넘어선다. 삶의 롤러코스터를 타본 이가 젊은이들에게 들려주는 지혜의 서다. 가령 고통에 직면했을 때 마음가짐을 파머는 이렇게 조언한다. 마음이 메마르면 고통의 당사자를 산산조각 내고 다른 사람까지 부서뜨리지만 마음이 유연하면 부서져 열리는데 여러 형태의 사랑을 위한 더 큰 능력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윤미 기자/meelee@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