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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쉼표] 다섯번의 기회
여주 효종 영릉(寧陵)

조선에게는 다섯 번의 국운 융성, 쇠락 방지의 기회가 있었다.

세종이 다져놓은 국왕 지휘의 군사훈련(연천 등)의 정례화, 병기의 선진화, 한글 창제에 따른 의식수준의 선진화 등 기틀이 문종,단종,세조때 왕실살육전 속에 퇴색됐다.

15대 광해군은 지혜로운 외교를 펼치고 암중모색하며 국력을 키우고자 했지만, 국익 마저 외면한 정쟁에 꺾인다.

광해를 누르고 쿠데타에 성공한 인조는 정세를 오판하다 삼전도 항복 굴욕을 당한다. 조선의 국운을 쇠락하게 한 핵심 장본인으로 꼽힌다.

정조와 헌종 조에도 국운 반등의 기회와 국왕의 의지가 있었지만, 노론과 세도정치의 득세 속에 무산됐다.

당파의 탐욕과 세도정치, 삼정 문란이 암 덩이가 되기 전이던 효종 때가 아쉽다. 아버지 인조의 오판을 거울삼아 뭔가 해보려는 의지가 강했다.

형인 소현세자와 함께 청에 볼모로 잡혀 지낸 세월이 있었기에 귀국후 부국강병을 꾀했다. 1649년 즉위한 효종은 뜻을 같이하는 신하들과 함께 은밀히 북벌계획을 수립해 군비 확충, 군제 개편, 무관 우대, 군사훈련 강화, 하멜 일행과의 신무기 개발 등에 힘썼다.

효종의 계획은 그러나 1659년 독살설과 함께 죽음을 맞으면서 좌절된다. 북방정책 찬성에서 반대로 돌아선 ‘노론의 영수’ 송시열의 변심도 작용했다.

효종은 경제적으로는 대동법을 펼쳤고, 상평통보를 널리 사용토록 하는 등 경제민주주의도 도모했다.

효종의 계획이 성공했다면 조선은 청과 왜 등 주변국들이 함부로 넘보지 못하는 부활의 길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못 다 핀 꽃’ 효종의 영릉(寧陵)은 성군 세종의 영릉(英陵)과 우리말 발음이 같고, 여주시 능서면에 ‘왕의 숲길’이라는 이름으로 연결돼 있다. 오는 8월20일까지 휴무없이 특별개방한다.

소나무 숲 터널이 시원하다. 더 없는 ‘에듀캉스’, 아들이 아빠에게 나라의 길을 묻는 뇌색 산책로이다.

함영훈 선임기자/a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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