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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스 함무라비, 묻다…“이럴 때 당신이라면…”

JTBC ‘미스 함무라비’ 잔잔한 공감
문유석 판사·곽정환 PD 의기 투합
탄탄한 대본·연출·편성 3박자 ‘케미’
법정드라마 홍수 속 차별화에 성공
복잡한 현실문제에 근본적 물음 던져

JTBC 월화드라마 ‘미스 함무라비’는 답답한 현실을 드라마에서나마 통쾌하게 뚫어주는 ‘사이다’는 아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시청률이 그리 높게 나오지는 않을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3~4회에 5%대로 기대 이상의 높은 시청률이 나왔다. 시청자들이 드라마를 보는 안목이 높음을 입증하는 수치다.
‘미스 함무라비’는 정의로운 판사 한 명이 영웅이 돼 세상을 바로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주폭 노인 에피소드와 직장내 성폭행 사례 등 생생한 리얼리티를 담아내면서도 날카로운 통찰과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아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렇게 해서 요즘 유행하다시피하는 법정드라마중에서도 차별화에 성공했고, 장르드라마의 다양성 목록에도 올라갈 수 있었다.

이건 단순히 현직 판사가 집필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원작자와 PD간에 오랜 기간 호흡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유석 판사와 곽정환 PD는 고교 동창이다. 곽정환 PD가 대학교 1학년때 문유석 판사는 같은 대학 3학년이었다. 곽 PD는 문 판사를 처음 만난 신입생 환영회때 술을 많이 먹인 선배였다고 기억했다.

그러다 곽정환 PD가 KBS에 입사해 8부작 ‘한성별곡-正’(2007년)을 만들고 난후 둘은 다시 만났다. 조선의 신분제도에 억눌린 민중들의 삶과 그것을 극복하려는 젊은이들, 새로운 조선을 만들려는 개혁군주 이야기를 담은 이 드라마를 보고 문 판사가 연락을 한 것.

“드라마 잘 봤다. 수준 있는 법정드라마도 나왔으면 좋겠다.”(문 판사)

“형이 글 잘 쓰니까 형이 한번 해보는 게 어때요?”(곽 PD)

장르물은 작가나 PD에게나 전문성이 요구된다. 다양한 본질에 대한 가치와 깊이를 담아야 하지만 드라마 작가들이 자료조사로 담기에는 한계가 생긴다. 물론 이를 극복하는 작가들이 간혹 나오기는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문 판사는 ‘다음 카페’ 등을 중심으로 법정 장르물 기획을 하다가 중단됐지만, 그 꿈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한겨레신문에 ‘미스 함무라비’를 연재하고 단행본으로도 냈다. 소설 형식이긴 했지만, 재판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콩트 중심이었다.

두 사람은 드라마로 만들어야겠다는 의지를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곽정환 PD와 계약을 맺고 있는 제작사인 NEW에서 바로 ‘미스 함무라비’ 판권을 확보해주었다. ‘태양의 후예’를 제작했던 영화사 NEW의 자회사인 스튜이오앤유의 장경익 대표는 전형적인 드라마 타이즈 기법을 따라가지 않는 드라마를 택하는 선구안을 지녔다. 복잡하고 난해할 수 있어 대중적으로는 실패할 수도 있지만, 여기에 당의정을 입혀 쉽고 재밌는 척 하지 않겠다는 데 서로 의기투합했다.


하지만 여전히 고민은 있었다. 드라마 전문 작가를 붙이느냐는 문제였다. 노련한 작가와 콜라보레이션을 하면 산만함을 없애고 극의 흐름을 조절할 수는 있지만 기존 드라마 트루기로 갈 수 있었다. 반면 경험 없는 신인 작가를 붙이면, 철학과 깊이와 같은 원작의 정신을 제대로 담을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곽 PD는 문 판사에게 직접 대본을 써보라면서 빈 부분이 생기면 자신이 작가와 상의해 메꾸어나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곽 PD가 문 판사가 직접 쓴 대본을 받아보니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는 것.

편성은 JTBC에서 받았다. 시청률보다는 작품성을 중시하고 새로운 시도를 뚝심있게 밀어붙일 수 있는 방송국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마이너한 정서를 끝까지 유지하며 시즌2까지 만들어낸 ‘청춘시대’의 함영훈 CP와 원작을 훼손하지 않고 ‘송곳’을 제작한 김석윤 국장이 있는 곳이었다. 탄탄하고 리얼리티까지 갖춘 대본과 작가의 생각을 잘 담을 수 있는 연출력, 이를 뚝심있게 끌고갈 수 있는 편성도 이뤄졌다.

곽정환 PD는 “‘미스 함무라비’는 일상생활과 맞땋아있으면서도 쉽게 판단을 내릴 수 없는 복잡한 문제들을 다루어 우리 이웃이나 입장이 다른 사람들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드라마”라면서 “현실에는 단칼에 무 자르듯이 결정을 내릴 수 없는 문제들이 너무 많다. 이를 바라보는 건 갈등과 이해관계를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이 드라마가 통쾌한 사이다는 아니지만 이런 미덕이 있다고 생각한다. 용기 있는 시도를 지지해준 관계자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서병기 선임기자/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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