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의 소용돌이’란 말을 최근 곱씹게 된다.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상대를 향해 ‘노망난 늙은이’ ‘꼬마 로켓맨’이라고 저주와 악담을 퍼붓던 두 정상이 곧 전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더없이 밝은 웃음을 지으며 악수를 나눌 것이다. 미국 본토를 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전배치 위협과 북한을 상대로 군사옵션 경고를 날리던 이들은 상대를 추켜세우는 덕담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2018년 6월12일’을 역사에 기억되게 할 순간은 바로 이 다음부터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의 목표는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다. 빠른 시일내에 비핵화 절차를 이행하고 이를 검증케 한다면 체제보장과 경제번영을 약속하겠다” 하고 김 위원장이 “CVID 수용하겠다”고 화답한 뒤 ‘이행 시간표’까지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면, 모두가 이기는 게임.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다. 반면 회담 도중 둘 중 한 명이 ‘정중하게’ 자리를 뜨거나, “앞으로 한반도에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나는 오늘 멋진 친구를 만났다”(트럼프) “비핵화 의지를 믿어준 트럼프 대통령께 경의를 표한다”(김정은) 식의 ‘말의 성찬’만 주고받은 뒤 박수치고 헤어질 경우 모두를 난감하게 하는 시나리오가 된다. 아니 한 발 더 내딛는다 쳐도, 북한의 ICBM 폐기 확답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만족한다면 이건 또 우리와 일본에 최악의 시나리오다. 트럼프 대통령 스스로가 수차례 강조했듯이 과거 정부의 실패를 반복해선 안된다. 이를 위해선 ‘세기의 담판’에 마주한 두 정상의 ‘과감한 결단’이 절실하다. 부디 이번 회담이 세계 역사를 잠깐 들었다놓는 작은 소용돌이에 그치지 않고, 되돌릴 수 없는 평화를 향해 도도히 앞으로 흐르는 역사의 크고 선한 물줄기가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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