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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범한 사람들이 펼치는 ‘셀프 디스’ 유머 일곱편
최미진, 나정만, 권순찬…

이기호의 소설집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오빠 강민호’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이름이다. 일곱 편의 단편을 담은 소설집은 각각의 소설이 모두 주인공 혹은 결정적 인물의 이름을 제목으로 달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불려지는 평범한 이름들이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다소 한심하고 지질한 소설가인 ‘나’가 등장한다. ‘나’는 작가 자신의 이름으로 명시되기도 하고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헷갈릴 정도다.

이 중 단편 ‘최미진은 어디로’는 한 중고 온라인사이트에 올라온 ‘이기호의 소설’을 두고 벌어지는 얘기다. 다양한 국내외 소설을 판매한다고 올려놓은 게시물에서 내 소설을 발견한 ‘나’는 판매자의 한줄 평에 속이 뒤틀린다. 


한마디로 ‘병맛소설’이라는 건데, “꼴에 저자 사인본”이라는 글까지 덧붙여 놓았다. 더욱이 다른 책을 살 때 끼워주겠다는 말에 나는 판매자의 얼굴을 볼 심산으로 직거래를 하겠다고 나선다.

광주에서 서울까지 기어코 올라와 만난 판매자는 작가의 얼굴을 알아보고 연신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인다.

이기호식 유머가 가장 잘 살아있는 소설로, 작가의 ‘셀프 디스’를 통해 우리의 부끄러움을 돌아보게 한다.

‘나정만씨의 살짝 아래로 굽은 붐’은 용산 참사를 이기호식으로 가볍게 눙쳐낸 작품이다. 용산 참사를 취재중인 소설가가 현장으로 출동하지 못한 크레인 기사를 인터뷰하는 내용으로, 저마다 하루 하루 쫒기는 고단한 삶을 지키는 것과 철거민의 행동이 그렇게 거리가 먼 것인지 행간을 통해 들려준다.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은 돈을 떼인 권순찬이 아파트 앞에서 일인시위를 하면서 벌어지는 얘기. 주민들은 처음에는 호기심과 동정심에 관심을 보이고 돈을 모아 전달하지만 그가 거절하면서 그를 눈엣가시 같은 존재로 여기게 된다.

대학교수이자 소설가인 나는 사태에 거리감을 갖고 방관자로 지켜볼 뿐이다. 왜 정작 비난 받아야할 사람이 아닌 ‘착하고 애꿎은’ 사람들끼리 상처를 입어야 하는지 묻는다.

작가가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쓴 소설은 부끄러움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를 오가며 쓴 웃음을 짓게 한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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