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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번역은 ‘완전한 언어’에 이르는 것…번역의 윤리·역할을 말하다
번역이 출판계 화제의 중심에 서 있다. 그간 일본어나 영어 중역을 통해 국내 소개돼온 책들의 원전 번역 붐이 일면서 오류에 대한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게 한 이유이고, 여기에 맨부커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의 번역과 관련, 논란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번역에 대한 생각은 작가나 번역가마다 입장이 달라 하나의 결론에 닿기는 어렵다.

알랭 드 보통, 필립 로스, 커트 보니것 등의 작품을 포함, 27년간 200여 권을 번역한 작가 정영목은 이런 번역의 문제를 두고 “번역가의 과제는 완전한 ‘번역’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언어’에 이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번역에 대해 품은 질문과 고민을 담은 에세이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문학동네)에서 저자는 번역가로서의 기본자세에 대해 곰곰 생각해온 것들을 차분하게 들려준다.

그는 두 언어의 차이를 좁히는 번역을 알사탕에 비유했다. 흔히 번역은 “두 언어의 차이를 고려해 그것을 목표 언어로 옮겨놓는 일만 남은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번역이 이렇게 알사탕의 껍질을 바꾸듯이 기계적으로 되는 일은 아니다”는 것이다. “의미는 알사탕처럼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지도 않으며, 게다가 더운 여름날 녹아버린 것처럼 껍질에 들러붙기도 한다”는 것.

그는 “어색하고 낯설고 생경한 면을 통해 우리의 현실 속에 어떤 것이 없음을 알려주고, 또 우리의 현실과 바깥에서 온 언어가 우리의 현실과 어딘가 어긋나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 번역의 역할”이라는 말도 했다.

이는 언어가 공동체의 생활과 생각을 반영한다고 할 때 한 언어의 낱말에 완벽하게 대응하는 언어는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가 가능하다.

AI(인공지능)시대에 인간번역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와 관련, 저자는 번역이란 작업이 읽기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해석이란 창조적 작업이 개입된다는 것이다. 현재의 기계번역은 그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된다. 즉 알파고가 바둑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바둑을 두는 것처럼 텍스트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번역이 이뤄진다. 이 점이 놀라움을 주지만 이로써 번역은 인간번역의 길과 기계번역의 길이 분명하게 갈렸다고 말한다. “기계에게는 인간처럼 읽는다는 것, 즉 해석을 통하여 창의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오히려 읽지 않는 쪽이 효율이 좋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란 것.

저자는 이 책에서 번역에 대한 테크닉보다는 번역의 윤리와 역할, 번역가의 글쓰기 등에 깊이있게 들어간다.

“번역에서는 말귀를 알아듣는 게 가장 중요하고 어렵다.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관심이 깊어야 누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맥을 잡을 수 있다” “영어든 한국어든 어떤 언어를 잘한다는 것은 일정한 선을 넘으면 모두 사고의 문제, 인간의 문제” “번역에서 완전히 중립적으로 옮기는 것은 불가능하다”등 저자의 번역에 대한 생각은 관련 일을 하는 이들 뿐만 아니라 독자들이 어떻게 번역서를 읽어야 할지 이해를 돕는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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