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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공정위는 ‘만능열쇠’가 아니다
‘만능열쇠’라는 게 있다. 40대 초중반 세대라면, 어린 시절 자동차 와이퍼를 장착하는 철제부품을 열쇠모양으로 만들어 온갖 자물쇠를 열어보려는 시도를 한번쯤 해봤을 터이다.

어쩌다 운좋게 열리는 자물쇠가 있었지만, ‘만능열쇠’ 이름대로 죄다 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만능열쇠’는 어떤 잠금장치도 열 수 있을 것이라는 순수한 동심의 바람과 기대감으로 만들어진 놀잇감이었다.

요즘 공정거래위원회를 보면 그 때의 ‘만능열쇠’를 보는 듯하다. 공정위는 김상조 위원장 취임 이후 지난 1년간 문재인 정부의 경제민주화 최선봉에서 대기업 총수일가의 경제력 집중에 벼린 칼날을 들이댔다. 경제사회적 약자인 ‘을’의 편에 서서 중소상공인, 골목상권을 보호하며 이른바 ‘갑을관계 4대 영역’의 공정경제 질서를 바로잡는데 전력투구하며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경제정의에 목말랐던 국민들이 ‘김상조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공정위에 아낌없는 찬사와 박수를 보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부작용도 커졌다. 국가경제와 시장의 부조리를 공정위가 모두 해결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심리가 사회 전반에 만연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공정위에 거는 국민들의 바람은 상상 이상이다. 실제로 청와대 국민청원사이트를 보면 치킨업계 배달료 문제부터 항공사 마일리지, 로또번호나 주식종목 추천 피해 구제 등 온갖 분야에 대한 공정위의 감시와 처벌을 촉구하는 청원들이 수백건에 달한다.

개혁 속도를 문제삼는 시민사회단체의 요구도 빗발친다. 김 위원장의 친정격인 참여연대는 이달 들어서만 공정위와 관련해 8건의 논평과 보도자료를 냈다. 참여연대는 김상조 공정위가 지난 1년간 분투했음에도 재벌개혁 의지 부족, 가맹분야 불공정행위 근절 방안 미흡, 경제분야 적폐청산 작업 부진 등을 지적하며 비판 목소리를 높였다.

이같은 국민들의 기대와 요구는 공정위로서는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민심은 당장 가시적인 퍼포먼스를 바라지만, 정해진 절차와 권한에 맞는 법 집행에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고, 새로운 규제의 법 개정도 하루 아침에 끝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재벌개혁, 경제민주화는 새 정부가 출범하고 힘이 있는 6개월 이내에 몰아붙여야 한다는 접근방법에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30~40년간 지속돼온 낡은 경제질서를 고치는 일이 불과 몇 개월만에 가능하겠냐는 의미다. 대신 김 위원장은 조금 더디더라도 ‘불가역적’인 경제민주화를 위해 개혁의 방법론을 새롭게 정립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김 위원장은 자신에게 보장된 임기 3년 동안 추진할 과제를 단기ㆍ중기ㆍ장기로 나눴다. 그리고 그 로드맵에 따라 공정위는 차질없이 한발짝씩 앞으로 나가고 있다. 공정위를 ‘만능열쇠’처럼 여기며 당장 불편하고, 부당한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채찍질한다면 지속가능한 경제민주화는 자칫 좌초할 수도 있다. 김 위원장의 임기는 아직 2년이나 남았다. 지난 1년간의 변화와는 비교도 안될 경제민주화의 동력은 국민들이 지켜줘야 한다.

igiza7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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