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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학]국제 측정단위 재정의, 국내 연구진이 이끈다
- 표준硏 질량표준 구현 키블저울, 볼츠만 상수 불확도 해결, 단전자 펌프 소자 개발

[헤럴드경제=구본혁 기자] 일상생활 속 단위기준인 질량(kg), 전류, 온도, 물질량을 측정하는 표준이 오는 2019년부터 새롭게 재정의된다.

단위 역사상 이처럼 한꺼번에 재정의가 이뤄진 사례는 처음이지만 일상생활속에서는 큰 변화는 없을 전망이다. 헤럴드경제는 국제단위기준 재정의와 관련된 국내 연구현황을 짚어봤다.[편집자=註]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전경
표준연 이광철 박사 연구팀이 킬로그램 재정의를 위한 ‘키블저울’을 살펴보고 있다.[제공=한국표준과학연구원]

▶새 질량표준 키블저울로 세운다= 킬로그램은 지난 129년 동안 백금 90%와 이리듐 10%로 구성된 ‘국제킬로그램원기’를 기준으로 삼아왔다.

조금씩 진행된 오염과 손상으로 인해 약 50마이크로그램에 달하는 미세한 질량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새롭게 재정의되는 킬로그램은 변하지 않는 기본상수 중 하나인 ‘플랑크 상수(h)’를 통해 개정될 예정이다. 플랑크 상수는 ‘키블 저울’이라는 장치를 통해 킬로그램과 연결성을 갖게 된다.

키블 저울은 일명 와트 저울이라고도 한다. 기계적 일률과 전기적 일률이 같다는 원리를 이용해 플랑크 상수를 구하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킬로그램 하나를 정의하기 위해서는 키블 저울 하나에 질량, 중력, 전기, 시간, 길이 등 수많은 측정과학을 집대성해야 한다. 그것도 모든 측정의 불확도를 10억분의 일 수준으로 구현해야 하는 고난도의 개발이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키블저울을 제작해 운영하는 국가는 미국, 캐나다 등 6곳 밖에 없다.

이와 관련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역학표준센터 이광철 박사팀은 지난 2010년부터 키블저울 개발에 착수했다. 현재 연구팀은 물리적 에너지와 전기적 에너지를 비교하는 장치인 ‘키블 저울’을 이용해 플랑크 상수의 측정값을 측정한 상태다.

이광철 박사는 “키블 저울은 현재까지 단위계를 이용해 플랑크 상수를 가장 정밀하게 측정하는 실험방법”이라며 “국제단위계 재정의는 앞으로 과학 및 산업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시스템을 정비하고 3년 내에 세계 최고수준인 질량 불확도를 달성해 미국, 프랑스, 캐나다 등과 측정 정확도를 비교하는 국제비교에 참여할 계획이다.

산업이 요구하는 시점에서 완벽한 표준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도 연구팀이 연구를 서두르는 이유다. 표준이 정교해진 이상 이를 기반으로 하는 첨단기술이 등장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신기술이 정확한 표준을 필요로 할 때 제공하지 못한다면 산업의 기반이 흔들리고 엄청난 국가적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이 박사는 “킬로그램 정의가 바뀌는 시점 이후로 키블저울이 없는 나라는 키블저울을 가진 타국의 질량표준에 의존해야 한다”며 “세계 최고 수준의 키블저울을 구현해 국가 표준 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표준연 양인석 박사가 음향기체온도계를 이용, 열역학적 온도 측정 연구를 하고 있다.[제공=한국표준과학연구원]

▶볼츠만 상수의 국제적 불일치 해결= 과학자들은 물이라는 물질의 성질을 이용해 온도를 정의하는 것에 만족할 수 없었다.

때문에 에너지와 온도를 연결시켜주는 기본상수인 ‘볼츠만 상수(k)’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전 세계 표준 과학자들은 볼츠만 상수를 기준으로 새로운 온도 표준을 확립하기 위한 연구에 매진해왔다. 정확한 켈빈을 정의하는 길고 긴 여정에서 마지막 실타래를 푼 것은 다름 아닌 표준과학연구원이다.

볼츠만 상수를 정의의 기준으로 삼으려면 볼츠만 상수를 정확히 측정해 고정된 값을 얻어야 한다. 현재 볼츠만 상수를 측정하는 가장 정확한 방법은 음향기체온도계를 사용하는 방법으로, 프랑스와 영국의 표준기관에서 이를 이용해 볼츠만 상수의 측정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국제적인 혼란이 빚어졌다. 각 기관이 백만분의 1보다 나은 정확도를 주장했지만 두 결과 간에 백만분의 3의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표준연 열유체표준센터 양인석 박사팀은 이같은 오류가 측정에 이용하는 기체인 아르곤의 평균 분자 질량을 측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가정했다.

양 박사는 프랑스와 영국 표준기관으로부터 실험에 사용한 아르곤 시료를 받아 기체시료의 동위원소 구성비를 정밀 측정했다. 그 결과 영국의 표준기관이 사용한 아르곤의 평균 분자 질량이 실제보다 백만분의 3 높게 측정됐음을 밝혀냈다. 영국표준기관은 오류를 인정하고 결과를 수정했고, 세계적으로도 성과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국제측정학 분야 최고 학술지 ‘메트롤로지아’가 선정한 2015년의 논문으로도 선정됐다.

2015년 불일치 해소 이후 세계 각국의 연구를 통해 볼츠만 상수의 불확도는 최종적으로 백만분의 0.37로 정해졌다.

양인석 박사는 “국내 기술로 볼츠만 상수의 국제적 불일치를 해결해 오는 11월 최종 결정되는 켈빈 재정의의 가장 큰 걸림돌이 사라졌다”며 “세계적인 선진 표준기관에서 측정한 결과의 최종 심판자 역할을 표준연이 수행함으로써 국제 표준 분야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였던 성과”라고 말했다. 

표준연 연구진이 단전자 펌프 소자의 성능평가를 진행하고 있다.[제공=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전류 표준 정립할 ‘단전자 펌프 소자’ 개발= 암페어는 정의가 불분명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면이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과학자들은 전자 1개의 전하, 즉 기본전하를 나타내는 상수인 e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단위 시간당 전하의 흐름’으로 전류를 정의하는 것이다.

새로운 암페어의 정의는 변하지 않는 e라는 기본상수에 근거하기 때문에 정의의 모호성이 사라지고, 정의에 필요한 단위들이 기존 세 개에서 초(s) 하나로 간소화돼 매우 간단해질 예정이다. 새로운 암페어 정의를 실현하는 방법으로는 ‘단전자 펌프 소자’를 사용하는 것이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력하다. 단전자 펌프 소자는 전하를 띈 기본 입자인 전자를 외부 마이크로웨이브에 의해 주기적으로 발생시키는 소자다.

표준연 양자기술연구소 김남ㆍ배명호 박사팀은 지난 2015년 암페어 재정의에 기초가 되는 세계 최고 수준의 단전자 펌프 소자를 개발했다. 연구진은 전자를 퍼 나르는 역할을 하는 양자점 포텐셜의 모양과 깊이를 조절, 0.1nA(나노암페어)의 전류 불확도를 2ppm(백만분의 1) 수준까지 낮추는데 성공했다. 이는 양자점 포텐셜을 이용한 전류 발생 및 측정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양자점 포텐셜 에너지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단일 전자에 대한 보다 정밀한 제어가 가능해지므로 극미세 수준의 전류를 보다 정확하게 발생시킬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얻은 단전자 펌프 소자의 정확도는 이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한 영국 표준기관과 동일한 수준이다.

김남 박사는 “단전자 펌프 소자가 새로운 전류 표준 소자로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정확도를 향상시키고 있다”며 “새로운 전류표준을 통해 전기 단위 전체의 정밀도를 올리고, 양자정보통신 등 차세대 전략기술 개발의 원천기술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nbgk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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