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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증권가, 삼성증권 사태에 강 건너 불구경할 때 아니다
“단순히 직원의 입력 오류라거나 받은 주식을 내다 판 직원의 모럴헤저드(도덕적해이)로 치부할 일이 아닙니다. 이 바닥에서 바뀌지 않고 반복되는 문제가 있다면 다함께 무엇이 잘못 됐는지 진단하고 고쳐야죠. 증권사도 예외가 아닙니다.”

오랜 기간 증권업계와 유관기관에서 일해온 한 원로에게 “삼성증권 사태를 어떻게 보느냐”고 던진 질문에 돌아온 답변은 지극히 당연하고도 신선했다.

‘결자해지(結者解之)’라는 사자성어로 압축할 수 있는 그의 조언이 신선했던 것은 ‘유령주식 발행 사고’의 책임이 비단 당사자인 삼성증권 만이 아니라 뒤처진 시스템과 조직문화를 버리지 못한 증권사들에게도 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이 실제로 증서를 손에 받아들지 않고도 안심하고 주식거래를 할 수 있는 것은 시장 시스템이 주식의 가치를 보증하고 안정적으로 유지해 줄 것이란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는 내 재산을 불려달라고 돈을 맡긴 증권사가 되레 그 믿음을 훼손했다는 점에서 주식 시장의 근간을 흔들었다.

주식시장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졌는 데도 다른 증권사들은 마치 ‘강 건너 불구경’인 듯한 형국이다. “문제가 된 삼성증권의 우리사주 배당시스템과 우리 시스템은 다르다”며 손사레를 치며 선을 긋는 증권사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시야를 좀더 넓혀 거래 시스템 전체를 살펴보면 문제는 다른 증권사들에서도 발견된다. 흔히 ‘팻 핑거’라고 불리는 증권사들의 주문 입력 오류로 인한 손실은 역시 한두번 있었던 일은 아니다.

지난 2011년 골든브릿지증권 직원이 옵션만기일에 옵션을 매매하려다 선물계좌 주문을 내 268억원의 손실을 입었고, 2013년에는 한맥투자증권이 직원의 옵션 이자율 입력 오류로 462억원의 손실을 입고 파산에 이르렀다.

동변상련의 아픔 때문인지 증권사들은 동종업계에 대한 쓴소리를 내는데 소극적이다.

사고가 발생한지 1주일이 넘도록 삼성증권에 대한 리포트를 발행한 증권사 리서치센터는 두 곳에 불과했다. 그나마 이번 사태로 인한 손실에 대해서는 명확히 설명하지 않았다. 국민연금 등 연기금이 삼성증권과 직접 운용거래를 잠정중단하고 한국은행이 외화채권 매매를 중단하는 등 당장 실적 악화가 불보듯 뻔한데도 투자자들에게 경고를 하는 보고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같은 증권사들의 ‘눈 가리고 아웅’에 투자자들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금융소비자원은 “삼성증권 사태는 국내 증권사들의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한지 새삼 증명한 것”이라며 “국내 자본 시장의 물적ㆍ인적 시스템의 병폐를 해소하기 위해 대대적인 혁신이 시급하다”고 꼬집었다.

금감원이 이번 사태에 대해 “무차입 공매도와는 개념적으로 다르다”며 선을 그었지만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 “이참에 공매도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이 역시 기관에게만 허용된 공매도 제도가 개인투자자들의 손해를 강요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불만에서 기인한다.

증권사들이 유관기관들로부터 주식을 빌려 손쉽게 돈을 벌면서 개미투자자들에게 손해를 떠넘기는 게 아니냐는 것. 심지어 “수시로 증권사가 주식을 마음대로 발행해 공매도에 이용한 것 아니냐”는 음모론도 나온다.

지난 1분기 증권업계는 중개수수료 수익과 투자은행(IB), 자산관리(WM) 부문 수익 증가에 힘입어 사상 최대 분기실적을 냈지만 그 과실은 투자자들에게 돌아오지 않는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오히려 주식거래 수수료 무료 이벤트로 끌어모은 고객에게 고금리로 돈을 빌려주며 위험한 신용거래를 부추기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

최근 증권업계는 ‘원칙 중심의 규제’를 통해 자유로운 영업활동을 보장받고 최신 투자 기법을 도입하길 바라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투자자들의 신뢰 없이는 ‘헛된 꿈’일 뿐이다.

증권사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면 금융당국으로선 규제 강화 카드에 손이 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증권사들은 당국의 입만 쳐다보거나, ‘소나기만 피하자’고 볼 것이 아니라 그동안 등한시 했던 내부통제를 강화하고 시스템적 오류를 재확인하면서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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