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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업들 “어떻게 쌓은 영업기밀인데…”
반도체 이어…이번엔 이통원가
기술자료 등 기밀노출 압박감
정유사 또 소송제기될까 우려
“기업활동의 핵심 지재권 위협”


대법원이 12일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의 통신요금 원가를 공개할 것을 최종 판결하면서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원가공개 요구가 자칫 타 업종 및 제품으로 번지지 않을까 기업들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가 핵심사업인 반도체 공장의 작업환경보고서를 공개할 것을 요구받는 등, 기업의 영업ㆍ기술 기밀 공개에 대한 공개 요구가 확산되는 양상이다.

기업들은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 환경 속에서 기업 경영 활동의 가장 기초적인 원가 마저 공개된다면 타 기업들과의 경쟁에 속수무책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패를 다 보여주고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국내외 주주들로부터도 적잖은 압박에 처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이통사 사례와 같은 원가공개 요구는 물가상승 등 소비자 불안감이 거세질 때마다 등장해 왔다.

앞서 2011년 정부는 정유사들에 휘발유 원가 내역 공개를 요구했으나 정유사들의 거센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당시 국제유가는 배럴당 110달러까지 치솟으며 국내 휘발유가격도 리터당 2000원대까지 폭등했다.

이에 소비자 반발이 커지자 공정거래위원회는 유류 원가가 합리적으로 책정됐는지 들여다보겠다며 정유사를 방문해 휘발유 가격 자료를 수거하는 등 강도 높은 제스쳐를 보냈다.

또 1994년 석유 가격 고시제 폐지 이후 한 번도 공개되지 않은 휘발유 원가 정보 제출도 요구했지만 정유사들은 휘발유값 절반이 세금에 해당된다며 이를 거부했다. 개별 정유사를 상대로 한 소송은 진행되지 않았다.

정유업계는 대법원의 이번 판결이 또 다시 기름 값의 원가 공개 소송으로 번지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정부와 시민사회의 원가공개 요구에 대해 기업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내비쳤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학과 교수는 “원가를 공개해 적정 소비자가격을 잡겠다는 발상이 잘못됐다고 본다”며 “그렇다면 원가의 몇 퍼센트를 가격으로 책정할 것인지 등 후속 질문들이 따라붙게 되는데, 가격은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고 기업 경쟁과 혁신에 따라 낮춰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업들은 원가 뿐 아니라 최근 고용노동부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작업환경보고서 공개를 강행하는 등 기업의 기밀 사안에 압박이 가해지는 데 상당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이번 결정으로 업계는 물론 학계에서도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SK하이닉스 등 다른 공장의 작업환경보고서까지도 공개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결국 김기남 삼성전자 반도체부문 사장은 지난 6일 “(작업환경보고서는) 공개해선 안 되는 중요한 영업기밀”이라며 “우리의 20년, 30년 노하우가 들어있는 보고서를 공개하면 안 된다”고 반대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아울러 원가에 이어 기술 기밀까지 ‘공개 가능 정보’의 범위가 갈수록 넓어지는 상황에 대해서도 경계하는 분위기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의 정보공개 판결 등이 다른 기업으로 줄줄이 이어질 수 있다”며 “기업활동에 가장 핵심적인 지적재산권을 위협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사법기관이 재산권을 보호해주지 못한다면 결국 기업 혁신에 대한 의지가 꺾일 수 있어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유환익 한국경제연구원 혁신성장실장은 “공익적 차원에서 정보를 알고자 하는 요구는 타당하지만 기업 경쟁력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보에 대한 공개 결정은 신중하게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세진 기자/jin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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