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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펜스 룰] 男 “생존 위한 선택…다른 방법 없다” 女 “또 다른 차별…불신·혐오 부른다”
“의심받지 않으려면 섞이지 않는 게 답이다.” “여자는 채용하면 안 된다.”

최근 미투 운동이 사회전반으로 번지면서 일부 남성들 사이에서 ‘펜스룰’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펜스룰은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2002년 인터뷰에서 언급한 규칙으로, ‘아내 외의 여성과는 단둘이 식사하지 않는다’는 뜻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적인 만남을 하지 않는 수준을 넘어 여성을 직장에서 고립시켜야 한다는 등 극단적인 목소리까지 나오자, 또 다른 차별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펜스룰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언제라도 남성들이 미투운동의 잠재적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여성과의 거리 두기는 ‘생존책’이라는 입장이다.

불필요한 대화나 만남 자체를 줄여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리는 것 자체를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직장인 배모(34) 씨는 “미투 운동을 보면 10년 20년 기억까지 안 나는 옛날 일을 갖고 문제제기를 하는데, 나도 뭔가 잘못한 게 있는 게 아닌가 계속 생각을 하게 된다. 불미스러운 일은 없었지만, 괜히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감정이 매우 불쾌하다”며 “이런 찝찝함에서 벗어나려면 여자를 만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주부 유모(45) 씨는 “남편이 그런 일에 휘말릴까 너무 걱정스러워서 여자 동료랑은 눈도 마주치지 말라고 신신당부 했다”며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펜스룰은 남성들이 앞으로 조심해야겠다는 의지를 넘어서서 여성 자체에 대한 불신과 혐오로 표출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직장인 김모(29ㆍ여) 씨는 “회사 상사가 미투운동 때문에 여성 채용이 꺼려진다고 하소연하는 것을 들었다. 그는 “가뜩이나 일자리에서 여성은 약자인데 극단적인 펜스룰이 여성고용차별로 이어질까 우려된다”며 “미투운동의 본질은 여성을 성적 도구로 생각하는 인식을 바꾸자는 것과 함께 ‘성차별’을 바로잡자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데 극단적인 여성 배제는 미투운동과 역행한다”고 꼬집었다.

대학원생 한모(31ㆍ여) 씨는 “전보다 여성이 사회진출이 늘었다고는 하나, 어떤 조직이든 인사권을 쥔 상급자는 남자”라며 “그들만의 리그를 깨기 위해 지금까지 사회가 노력해왔는데 미투 운동을 빌미로 여성을 배제하면서도 ‘우리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성이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을 손보지 않은채 피해자가 여성이 많다는 이유로 여성을 골칫덩이 취급하는 것은 문제”라고 비판했다.

펜스룰에 대한 이 같은 논쟁은 미투 운동 ‘이후’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제는 미투 운동 이후 남성과 여성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게 또 다른 숙제라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한 활동가는 “미투 운동이 막 터져 나오고 남성들도 함께 분노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해법은 나오지 않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자 극단적인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 것 같다”며 “이제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권력형 성범죄를 어떻게 정의내리고 해결할 수 있는지 함께 고민할 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권력형 성범죄는 가해자가 자신의 지위를 악용하는 극단적인 사례로, 권위적이고 비합리적인 조직문화를 변화해야 바로잡을 수 있다. 즉 남성과 여성 모두 힘을 합쳐야 하는 문제”라고 덧붙였다.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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