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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낭만싣고 ‘칙칙’ 추억찾아 ‘폭폭’…간이역으로 봄마중 가볼까
도경리역 등 폐선된 전국 24개 간이역
일반기차는 없지만 감성여행 관광지로

강원 삼척서 정동진까지 바다열차 운행
窓 마주보고 좌석배치 영화스크린 보듯

영덕~포항 동해선 이국적인 풍광 매력
세계유일의 ‘DMZ열차’ 는 특별한 경험


‘기차가 서지않은 간이역에 키 작은 소나무 하나….’

지금은 어엿한 관광기차역이 된 삼척해변역은 후진역이었다. 2003년 영동선의 지선인 삼척선(동해선 한 구간)이 시멘트 운반철도에서 바다열차 관광철도로 기능을 바꾸기 이전, 후진역은 ‘기차와 소나무’(1988년ㆍ이규석)라는 노래와 닮았다.

1970~1990년대. 너댓평 방갈로 만한 간이역사가 삼척해변을 내려다 보는 구릉지 철길 옆에 놓였을 뿐, 역무원을 만나기도 쉽지 않았다. 바닷바람을 맞아 키 작은 소나무는 어려보여도, 녹이 낀 간이역 창틀로 보아 육십갑자는 족히 됐을 것이다.

풍경은 참 좋은데 인적이 드물다 보니, 이성교제 금지라는 시골 고교의 준엄한 교칙을 위반해 몰래 데이트를 하던 풋사랑꾼이 가끔 눈에 띄었다. 동네꼬마녀석들은 철도법을 위반해 대못을 얹어 놓고는 사라졌다가 기차가 지나간 뒤 다시 나타나 비파형청동검 모양으로 변한 납작못으로 후진 바다 청정해역 물고기를 잡는 작살로 썼다. 삼척에 관광객이 몰리면서 ‘후지다’는 어감을 지우고 해변역으로 거듭난다.

같은 삼척의 도경리역은 예나 지금이나 주변에 민가가 거의 없다. 1990년대까지 강릉이 종착역인 영동선 저녁 완행열차 승객 중 상당수가 이곳에서 하차한다. 삼척시내로 가는 손님들이 내리는 곳이었다. 시내버스를 타기 위해 플랫폼을 뛰는 손님도 많았다. 2000년대 들어 태백-삼척-동해-강릉을 잇는 육로가 여러 갈래 시원하게 뚫리면서 환승 손님 마저 사라진 도경리역은 2008년 3월 문을 닫은 뒤 문화재로 등록됐다.

1988년 발표된 이규석의 ‘기차와 소나무’ 노랫말처럼 전국 24개 간이역에는 기차가 서지 않는다. 그 빈자리를 감성을 찾는 관광객들이 채우고 있다. 경칩이 지난 이 즈음에 간이역으로 봄마중 가보는 것도 좋은추억이 되지 않을까.

영화 스크린 같은 바다열차 차창=도경리역 등 전국 24개 간이역은 폐선(閉線) 등을 이유로 문화재가 됐지만, 삼척해변역은 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에서 관광객이 몰리는 중견역으로 격상됐기에 대조적이다. 전자든 후자든 요즘들어 추억찾기 감성여행객들이 많이 찾는다는 점에서는 같다.

지금 삼척-추암-동해-묵호-망상-정동진 구간엔 관광용 바다열차가 운행된다. 묵호역에선 평창올림픽 성화 바다열차 봉송도 이뤄졌다. 네모난 기차 차창은 감성 영화 스크린이다. 바다열차는 승객이 차창 너머 바다를 정면에서 보도록 좌석들을 객석처럼 배치했다. 스크린 속엔 청록빛 푸른 바다가 넘실댄다. 사랑하는 이와 어깨를 맞대고 바다를 보며 행복한 ‘멍 때리기’에 참 좋다. 동해 시외버스정류장에서 정선행 버스를 타면 정선아리랑열차 타는 곳을 찾아갈 수 있다. 이 열차의 창은 산봉우리와 계곡을 담는다.

동해선은 원래 북녘의 금강산 청년선 끝자락을 이어받아 강원도 고성 제진역에서부터 삼척해변쪽으로 이어지는 동해역(옛 북평역)을 거쳐 부산진역까지 이어지던 노선이다. 지금의 해파랑길 옆에 철마가 쉬지않고 달린 것이다. 북한의 남침 우려때문에 끊었다가 십수년전부터 조금씩 잇고 있다. 삼척에서 끝난 동해선의 흔적은 ‘몬주익의 마라톤 영웅’ 황영조가 나고 자란 삼척 문암해변엔 철길 없는 터널 관광지로, 궁촌~용화 해변레일바이크로, 듬성듬성 남아있다. 강원-경북도 경계선을 한참 지나도록 뚝 끊겼다가 영덕-포항 구간이 지난1월26일 개통됐다.

영덕-포항 동해선 설렘주의보=기차로 34분만에 닿는 영덕-포항 사이 새로 생긴 네 개 역은 매력 덩어리이다. 역에서 5분쯤 걸어가면 넘실거리는 파도를 만나는 월포역, 장사 상륙작전이 펼쳐진 장사역, 살이 꽉 찬 대게가 손짓하는 강구역, 이국적인 풍광이 멋진 영덕풍력발전단지와 가슴 시원해지는 죽도산전망대, 기와지붕과 흙담이 정겨운 괴시마을로 이어주는 영덕역까지, 모든 역에 ‘설렘 주의보’가 상시 발령중이다. 분홍색 복사꽃과 귀여운 대게 그림으로 알록달록 꾸며진 기차가 감흥을 더한다. 오는 22~25일 강구항 일원에서는 영덕대게축제가 열리니 군침까지 도는 봄 블루로드 기찻길이다.

경남ㆍ북 경계를 한참 지나도록 끊긴 동해선은 부산 다 가서 다시 낭만 열차로 부활했다. 부산의 동해선은 부전에서 일광까지 운행하는 복선전철로, 일광해수욕장, 대변항, 죽성성당에 곧바로 데려다 준다. 윤선도의 이배(유배지를 옮김)지 기장 황확대 앞 죽성드림성당은 해변바위 위에 세워진 붉은 첨탑 교회당 세트장으로 한폭의 그림 같다. 주변에는 황학정, 죽성리해송 등이 있다.

기장 남쪽끝 오시리아역에선 국립부산과학관과 해동용궁사가 가까운데, 거기서 남서쪽으로 이동하면 동해와 남해의 점이지대인 부산 스카이워크, 청사포 다릿돌전망대, 달맞이고개가 반긴다. 여기서부터는 미포-해운대-광안리가 순차적으로 작심한 듯 유혹의 손길을 뻗친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DMZ열차=한국의 기차에서 연상되는 이미지 중 하나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이다. DMZ 도라산 안보관광열차는 세계유일의 분단국가 한국에서만 볼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열차이다. 남북 군이 감시하는 비무장지대이므로 한국인은 공공신분증을, 외국인은 여권을 꼭 소지해야 한다. 수~일요일 오전 10시 8분 용산역에서 출발해 민간인통제구역과 DMZ를 둘러보고, 오후 5시 54분 용산역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서울에서 불과 두 시간 만에 북녘땅을 코앞에서 마주하는 것은 내외국인에게 모두 특별한 경험이다.

한국관광공사 이수택 국내관광마케팅팀장은 “평화열차 DMZ-도라산지역을 시작으로, 올 3월부터는 추천여행지에 ’외국인 관광객이 가볼만한 곳‘ 하나를 꼭 넣을 것이며, 이를 해외지사 등을 통해 지구촌에 알려나갈 예정”이라고 한다.

메트로, 도시철도 여행은 런던, 파리, 뉴욕, 오사카 등 요즘 세계 주요 도시들이 미는 아이템이다.

‘관광 지하철’ 광주, 대전=빛고을 광주가 문화예술 창의도시로 새 옷을 갈아입는 과정에서 지하철은 큰 역할을 했다. 광주지하철은 도심 주요 문화 관광 명소를 모두 연결해버렸다. KTX 광주송정역에 내리면 소장파 상인들의 톡톡튀는 아이디어와 레시피가 돋보이는 1913송정역시장을 만난다. 상영관이 단 하나라서 문화재급인 광주극장은 금남로4가역과 가깝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은 문화전당역 바로 거기이다. 100여 년 전 세워진 근대건축물과 전통 한옥이 어우러지고 작은 미술관과 펭귄마을이 매력적인 양림동역사문화마을에 가려면 남광주역에서 내리면 된다. 지하철 안에서는 바깥이 궁금할 수 밖에 없다. 이번 역에 내리면, 무엇이 어떤 모습으로 날 기다릴까, 설렘과 상상이 커지는 공간이 여행용 지하철이다.

대전지하철도 벽화거리 새마을동네가 있는 현충원역, 무료 족욕체험장이 자리한 유성온천역, 대전예술의전당과 대전시립미술관, 이응노미술관, 한밭수목원이 모인 정부청사역, 반경 1.1㎞에 대전 원도심의 볼거리를 모두 모아둔 대전역-중앙로역-중구청역 등을 연결한 관광메트로이다.

감성기차, 춘흥(春興) 점화플러그=서울역에서 인천공항1터미널역까지 43분이면 도착하는 공항철도는 도시인에게 가장 빨리 무의도 장봉도 등 섬 여행으로 안내한다.

겨우내 메말랐던 감성을 복원하는 일은 워밍업과 예열을 거쳐야 할 것이다. 가장 감성적인 여행수단, 기차는 겨울→봄 이행기에 가장 적합한 점화 플러그인 듯 싶다. 

함영훈 여행선임기자/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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