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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스포츠 칼럼-박영상 한양대 명예교수]하수구 청소하듯이…
요즈음 문화 예술계를 비롯한 사회 구석구석에서 일어났던 지저분한 일들이 폭로될 때 마다 50년대 동네 주민들이 나서서 집주변 하수구나 도랑을 청소하던 일이 겹쳐진다. 전쟁직후여서 하수시설은 엉망이고 각 가정에서 흘러나온 생활폐수, 오물 쓰레기로 진저리를 칠 지경이었다. 악취는 말할 것도 없고 오염된 환경은 상상을 초월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주민들이 날을 정해서 정기적인 동네 청소에 나섰었다. 빗자루로 주변을 쓸고 삽으로 개천에 고여 있던 오물을 걷어서 처리를 했었다. 고약한 냄새를 삼키면서 각종 오물을 개천 밖으로 꺼낸 후 백회(白灰)를 뿌려 햇볕에 말리도록 쌓아 놓으면 청소는 일단 끝난다. 참기 어려운 냄새와 오물 속에서 작업을 하는 것이 엄청난 고역이었지만 깨끗해 진 동네환경을 보면서 개운함을 느꼈던 기억이 새롭다.

지금 폭로되고 있는 문화계의 #Me Too운동이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10년이 훨씬 넘은 2000년대 초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져 자정운동이 벌어졌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몇 년 전에도 이와 흡사한 일들이 보도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폭로들은 우리식의 문제해결 방식인 ‘유야무야’나 ‘면피’수준으로 봉합되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세월을 보냈고 결국 또 터진 것이다.

처음 여검사로부터 비롯되었지만 봇물 터지듯 각 분야에서 걸출한 업적을 쌓았거나 대들보 같은 인사들까지 ‘그런 짓’을 했다는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또 그 방법도 객쩍은 실수가 아니라 짐승 같은 방법이나 노예를 부리듯 한 행동들이어서 그 분야에선 성폭행이나 성폭력이 일상화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이다. 아무튼 격발장치가 풀린 기관총처럼 폭로는 이어지고 또 이어질 조짐이다.

법조계, 연극계, 영화계, 학교 심지어 교회에서 까지 이런 일이 벌어졌기 때문에 말끔하게 정리 정돈한다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 당사자들도 마지못해 인정하거나 피하거나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어서 사실을 밝히고 책임을 묻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기자회견 리허설까지 했다니 황당할 뿐이다. 또 책임을 통감한다, 하던 일을 내려놓겠다는 등 많이 들어 본 얘기로 사건을 피하고 보자는 식으로 반성(?)을 하고 있다.

이쯤에서 좀 거칠지만 도랑을 청소하듯이 이 문제를 해결해 보자. 모든 것을 꺼내 놓는 일이 우선이다. 까발리는 과정에 온갖 악취가 진동하고 역겨운 모습이 쏟아질 것이다. 모든 것이 나올 때까지 진득하게 기다려야 한다. 성급하게 매듭 지으려하면 숨어있는 부분이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제도나 관행이 문제라면 공격적으로 고쳐야 하고 개인의 잘못이라면 추상같은 처벌도 따라야 한다.

오랜 시간 모멸감. 수치심, 분노를 삼키며 살아 왔을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리고 쓰리다.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바로 잡을 것은 바로 잡아야 한다. 대충 덮어 버리면 이런 일은 또 일어나게 마련이다. 급해도, 분해도 치밀하고 차분하게 모두가 나서서 청소작업을 전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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