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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박인호 전원 칼럼니스트]‘담배는 안 되고, 농약은 된다?’
필자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대학 신입생(82학번) 때 호기심에 이끌려 한두 번 손에 들긴 했지만, 아주 잠깐에 불과했다. 이후 강원도 최전방에서의 군 생활과 신문기자로 활동하던 시절에도 담배와의 연은 더 이상 없었다. 2010년 귀농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어떤 계기가 있었다. 대학 1학년 수업시간 때, 한 노교수님께서 “담배는 독가스”라며 피우지 말 것을 당부했다. 하지만 요즘과는 달리 당시에 담배는 성인의 대표적 기호품이자 ‘폼 나는’ 성인인증 표시이기도 했다. 호기심을 떨치지 못하고 직접 피워보았다. 노교수님의 말씀이 맞았다(요즘 이에 대한 반론은 거의 없을 것이다).

2010년 필자 가족(4인)은 강원도 홍천으로 들어왔다. 산 좋고 물 좋고 공기 좋다는 시골에서 맘껏 심호흡을 했다. 행복했다. 그러나 시골생활의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한두 해 겪어보니 농촌에는 담배연기보다 더 지독하고 더 나쁜 게 있었다. 봄부터 가을까지 곳곳에서 시도 때도 없이 뿌려대는 농약이 바로 그것. 담배연기야 피하면 그만이지만, 고정된 땅에 반복적으로 뿌려지는 농약은 피할 수도 없다.

필자의 농지(약 0.5㏊)는 화학농약과 화학비료를 일절 쓰지 않는다. 유기농과 자연재배 방식으로 작물을 키운다. 2015년에는 국가자격인 ‘유기농업 기능사’도 땄다. 하지만 필자의 밭은 유기농 인증을 받지 못한다. 바로 접한 이웃의 사과밭 때문이다.

보통 사과밭은 4~9월 중 농약(제초제 포함)을 11~15차례나 살포한다. 요즘은 사과나무 높이를 4~5m나 키우기 때문에 수작업으로 농약을 뿌려도 6m까지 올라간다. 이동식 살포기를 동원하면 10m 이상 공중으로 치솟아 공기와 바람을 타고 주변의 집과 농작물을 덮친다. 이쯤 되면 ‘농약 테러(?)’다.

필자는 억울하고 화가 났다. 뒤늦게 조성된 이웃의 사과밭에서 다량의 농약살포가 수시로 반복되고 있지만 아무런 보호를 받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피해를 입는 집이 두 채 더 있다). 혐연권을 인정받지 못하던 시절의 비흡연자 신세와 같다.

더욱 화가 치미는 것은 지자체에서 주변 주민의 피해가 불가피한 마을 안 사과밭 조성에 파격적인 보조금(전체 조성비의 70%)까지 지원했다는 사실이다(보조금은 다 국민 세금이다). 이후에도 조성된 사과밭에는 야생동물의 침입을 막기 위한 그물, 펜스 등의 설치비(보조금 50%)는 물론이고 각종 포장 및 가공, 심지어 축제 비용까지 지원해준다.

반면, ‘농약 테러’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는 주변 주민과 농지에 대한 피해대책은 전무하다. 심하게 말하자면, 사람이 사과만도 못한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다. 요즘 농촌에서는 사과, 인삼 등 농약 다량살포 작목들이 마을 안과 학교 주변을 가리지 않고 마구 들어서고 있다. 6차 산업이니 치유농업이니 하는 미래농업 구호가 무색하다.

새로운 인생2막 또는 3막의 삶을 위해 도시에서 농촌으로 새로 진입하는 귀농·귀촌인들이 한해 약 50만 명에 달한다. 그러나 전혀 예상치 못한 무차별 농약 살포로 인한 분쟁과 갈등 또한 급증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농촌진흥청, 그리고 농촌 지자체들은 속히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농약이 담배연기보다 더 안전한지, 사과가 사람보다 더 중요한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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